오피니언 사설

통화정책의 모든 가능성 열어놓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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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지난 주말 G20 회의에 참석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외신 인터뷰에서 “금리인상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한 주 전 국회 상임위에서 한 발언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윤 장관은 어제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내년 4% 성장을 자신한다”고 못 박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외신 인터뷰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은 4% 전후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개한 내년 예산안 규모는 올해보다 소폭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4% 성장을 이루려면 금리를 낮게 가져가는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조정은 중앙은행의 고유권한”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내부적으로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한은의 과감한 대응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은은 경제 비상사태를 맞아 단 4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3.25%포인트나 낮췄다. 정부의 공격적인 재정투자도 돋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처별 업무보고를 3개월 이상 앞당겨 지난 연말에 끝냈다. 또 서민 위주로 과녁을 분명히 했다. 경기부양책을 놓고 의회 조정 과정에서 시간을 허비한 미국이나, 무차별적인 현금 살포까지 동원한 일본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연초부터 효율적인 재정투자를 속도감 있게 집행할 수 있었다. 경제위기를 제일 빨리 극복한 한국의 성공신화에는 정부와 한은의 긴밀한 공조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금리 문제에 관한 한 한은에 맡기는 게 옳다. 자칫 외부 인사의 주문이 금통위를 압박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세계경제의 더블딥 우려가 남아 있고 원화 환율도 수출에 불리하게 움직이고 있다. 실업 문제까지 생각하면 금리 인상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자산가격이 계속 오르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한은으로선 섣불리 금리에 손을 댔다가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난을 뒤집어쓸 수 있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민감한 시점에 정부 인사들이 금리를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한은 금통위는 통화정책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독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감정싸움 하듯 갈수록 발언 수위가 높아지는 게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