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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세상보기] 담판가들이 일낼 7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7월은 담판가들이 일을 내는 달이다.

이산가족 상봉계획이 확정되느냐 안 되느냐, 금강산 관광객의 신변이 보장되느냐 안되느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모두 결판난다 (또 결판을 내야 한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이 지루한 남북 대치에 어떤 돌파구를 열려면) .

그러니 이 문제에 임하는 대표들의 담판 실력이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담판은 의논으로 시비를 가리거나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고상한 목표도 치열한 말다툼 끝에 달성된다.

마음씨 좋게 양보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담판가들이 나서야 한다.

지난 6월 22일 중국 베이징 (北京)에서 열린 남북차관급회담만 해도 그렇다.

"저, 북쪽 대표단의 명단 좀 봅시다. " "명단 같은 소리 하시네. 도대체 준다는 비료는 왜 안주는 거요. " "10만t 가운데 마지막 2만t을 실은 배가 악천후 때문에 공교롭게도 출항이 연기됐소. " "공교로운 소리 하시네. 그게 다 당신네 정성이 부족한 탓이오. 북의 동포에게 줄 비료가 떠나는 날 왜 하필 비가 오겠소. 인당수 (印塘水) 를 지나는 사공들이 심청 (沈淸) 아가씨를 물에 던진 그 정성의 반이라도 닮으시오. 회담은 그만둡시다. "

"참자 참자 했더니 정말 못참겠네. 여보시오, 나비 한 마리가 베이징에서 공기를 살랑거리면 다음달 뉴욕에서 폭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날씨 변덕을 설명하는 카오스 이론이오. 이곳 베이징에서 나비를 본다고 뉴욕의 폭풍까지 예상할 수 있겠소?" 과학적 반론에 북의 대표는 고개를 숙였다.

이런 담판이 없었다면 회담은 한 차례가 아니라 무한정 연기됐을지도 모른다.

담판은 그래서 중요하다.

"저, 회담장 호텔에 태극기가 걸렸는데 귀측에서 회담 속개에 지장을 받지 않겠죠?" "뭐요, 왜 인공기가 안 걸리죠?" "그러면 양쪽 깃발을 다 겁시다.

" "거 참 웃기시네. 여기가 유엔본부요? 가족 상봉이고 편지 교환이고 다 그만둡시다. 아니면 장소를 옮기든가. " "거 듣자 듣자 하니까 너무하네. 여보쇼, 댁의 수령도 해방 후 처음 입북했을 때는 태극기 아래서 연설하고 태극기 아래서 만세 불렀수다. 회담을 열겠소 말겠소. "

이같은 역사적.실증적 반론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북의 대표가 회담에 응한 것이 바로 6월 26일의 차관급회담이다.

비록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어도 회담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그게 어딘가.

어느 쪽이 굴욕을 당했느니 안 당했느니 하는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한가.

드디어 7월이 왔다.

담판을 앞둔 대표들이 제각기 각오와 소원을 말한다.

양측 차관급 대표의 기원을 살짝 들어봤다.

"고려 장군 서희 (徐熙) 할아버님. 당신은 거란 (契丹) 족의 침략을 탁월한 언변으로 막아냈습니다.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으니 북쪽 땅은 거란에 내놓으라고 침략군 장수가 협박하자, 당신은 고려는 고구려의 옛땅을 물려받았으니 북쪽 땅은 우리 땅이라고 일갈하셨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의 국경선은 압록강이 아니고 청천강 (淸川江) 이 될 뻔했습니다. 당신의 언변과 배짱을 이 지지리 못난 후손에게 내려주시옵소서. "

"병법의 신이신 손무 (孫武) 시여, 그대는 상대를 조종해야지 상대에게 조종당하면 안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상대가 서두르면 우리는 느긋하고 상대가 느긋하면 그들을 동요시키며 나를 숨기고 남을 드러내는 것이 허허실실 (虛虛實實) 의 묘계라고 가르쳤습니다. 도대체 우리의 속셈이 무어냐고 전 세계가 궁금증으로 안달이 나 있는 지금이 바로 세계를 주무를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부디 당신의 지혜와 담략을 저에게 내려주시옵소서. "

김성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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