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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에선 로맨티스트가 되지 마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3호 16면

#장면1=지난 4월 열린 KPGA투어 토마토저축은행 오픈 4라운드. 베테랑 골퍼 최상호(54)는 3퍼트로 보기를 했다. 공동 선두를 달리던 그는 18번 홀에서도 다시 1m 거리의 파 퍼팅을 놓쳐 연장전 기회를 놓쳤다. ‘퍼팅의 귀신’이라고 불리는 그가 최종 4라운드 17, 18번 홀에서 잇따라 3퍼팅을 하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78>

#장면2=지난해 5월 열린 KLPGA투어 KB국민은행 1차 대회 최종 3라운드. 첫날부터 단독 선두에 나섰던 안선주는 마지막 날 17번 홀까지 1타 차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18번 홀에서 3퍼팅을 한 끝에 연장전에 끌려들어갔고, 결국 우승 트로피를 조아람에게 내주고 말았다.

당시 안선주가 인터뷰에서 밝힌 말.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이상하게 마지막 라운드만 되면 불안하다. 짧은 거리의 퍼팅인데도 자꾸 안 들어갈 것 같은 불안감이 생긴다. 연장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은 곧 ‘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변한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불안해지고 부들부들 떨리는 건 아마추어뿐만 아니라 프로골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지난 21일 끝난 LPGA투어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나연도 ‘멘털(mental)을 타는’ 대표적인 골퍼였다. 마지막 날만 되면 샷이 망가진 탓에 우승을 놓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해 에비앙 마스터스에선 마지막 날 4홀을 남겨놓고 4타 차 선두를 달리다 막판에 무너졌고, 지난 3월 마스터카드 클래식에서도 막판 샷 난조로 우승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골프에서 부정적인 생각은 나쁜 결과를 낳는다. ‘안 들어가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은 보기나 더블보기로 연결된다. 아이언샷이나 드라이브샷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퍼팅은 특히 멘털과 많은 연관이 있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지인들과 라운드에 나섰는데 그날 따라 그린 위에만 올라서면 갖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홀이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 거야’ ‘이게 과연 들어갈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퍼팅을 놓치면 이게 무슨 망신이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퍼팅은 홀을 비켜갔다. 나중엔 50㎝ 거리의 퍼팅을 할 때도 손과 팔이 부르르 떨렸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과도한 중압감 때문에 ‘퍼팅을 하지 않고 홀아웃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추어 고수로 소문난 소동기 변호사가 이런 충고를 했다.
“로맨틱한 기질은 골프를 할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골프를 할 때 어설픈
감상주의는 금물이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골프를 할 때 부정적인 생각이나 자신이 없는 행동은 대형 사고의 원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파5홀에서 1타당 2만원짜리 내기가 걸렸다고 가정해 보자. 초보자들은 가까운 거리의 퍼팅을 앞두고 부들부들 떤다. ‘1타 실패=6만원 손해’란 공식을 머리에 그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고수는 다르다. 이 퍼트를 놓쳐도 다음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의 차이가 바로 판이한 결과를 낳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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