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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7900명당 공공도서관 한 개 한국은 7만6000명에 하나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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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호 22면

도서관으로 변신할 서울시 옛 청사 모습. 현재 그 뒤편에 새 청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중앙포토]

“이탈리아 농촌 지역이었는데 인구 1만 명에 도서관이 하나씩이에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는 셈이지요.”연수차 유럽 도서관을 둘러보고 온 정독도서관 자료봉사과 이선희 계장의 말이다. 국내 공공도서관의 사정을 알게 되면 그의 말에 묻어나는 부러움을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 수는 600여 개. 인구로 따지면 약 8만 명에 하나꼴이다. 이는 최근 10여 년 동안 크게 향상된 것이지만 다른 선진국과 견주기에는 어림없는 수준이다. 일례로 가까운 일본은 인구 4만여 명에 하나씩, 전국에 3000개가 넘는 공공도서관이 있다. 유럽의 독일·스페인 등은 아예 인구 8000명당 하나꼴이다.

공공도서관의 장서 수 역시 주요 국가와 격차가 크다. 한국은 전국 공공도서관을 다 합쳐 6000만 권이 채 못 된다. 일본은 3억 5000만 권이 넘는다. 인구 비례로 환산하면 한국은 1인당 한 권이 좀 넘는 정도다. 일본·미국은 그 배가 넘는 1인당 2.8권이다. 경제력으로는 세계 10위권 운운하는 한국이지만 문화 인프라의 기초인 공공도서관 규모는 이처럼 크게 뒤떨어져 있다.

지난해 정부가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현실에서 출발했다. 이 계획의 첫째 핵심 과제는 향후 5년간 전국에 300개의 공공도서관을 새로 짓는 것이다. 현재 600여 개인 공공도서관을 2013년까지 900개로 늘린다는 목표다. 공공도서관의 장서 역시 2013년까지 8000만 권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도서관은 인구 5만 명에 하나, 장서는 1인당 1.6권이다. 일단 기본적인 규모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수준에 턱걸이하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공공도서관뿐만 아니라 ‘작은도서관’을 늘려 가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공공 공립도서관의 경우 해당 지역 인구가 아무리 적어도 면적은 264㎡(약 80평) 이상, 기본 장서는 3000권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이보다 작은 규모는 흔히 ‘문고’로 불러온 것으로, 현재는 관련 법규와 정책에 그 명칭을 ‘작은도서관’으로 정해 두고 있다. 작은도서관은 33㎡(약 10평) 이상의 면적에 책 1000권 이상이면 가능하다.

새로 시설을 짓는 대신 각 지역의 유휴시설이나 기존의 문고를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동사무소를 통폐합하면서 생겨난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그 예다. 정부는 2023년까지 전국 3500여 개 읍·면·동마다 작은도서관을 두는 구상을 갖고 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도서관이 이렇게 늘어나면 도서관 사이의 협력이 더욱 유용해진다. 예컨대 가까운 도서관끼리 장서를 공동 운용하면 비교적 작은 도서관의 이용자도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의 폭이 넓어진다. 이 같은 도서관 사이의 협력 등을 위해 지난해 개정된 도서관법은 지역별로 대표 도서관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아직은 부산·인천·대전·제주도 지역만 대표 도서관이 정해져 있다. 서울의 경우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새 시청 건물이 완공되면 옛 청사가 대표 도서관이 될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옛 청사를 도서관을 비롯한 문화시설로 삼되 구체적인 공간 활용 계획은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물론 도서관을 많이 만드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영·유아에서 노인까지 다양한 이용자들에게 문턱을 낮추기 위해 도서관이 해야 할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 사서 인력을 비롯한 전문적인 서비스도 뒤따라야 한다. 국내 공공도서관의 서비스와 관련,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의 안찬수 사무처장은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여지가 많다”고 말한다. 그가 예로 드는 것은 미국 뉴욕 공공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1000만 권에 육박하는 막대한 장서로도 이름난 곳이다. 본관 외에 네 곳의 연구도서관을 두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과학·산업비즈니스 도서관이다. 여기서는 창업·투자를 준비하는 사람을 위해 기업·법률·특허 등 다방면의 실용 정보는 물론 상담까지 해 준다. 이런 서비스에 더해 안 처장은 “지역과 밀착된 서비스로 공공도서관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도 제안한다. 예컨대 지역 개발과 관련한 사례와 관련 법규를 모아 둔 도서관이라면 관련된 이슈가 벌어졌을 때 주민들이 정보를 얻고 논의를 펴는 명실상부한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도서관이 다양한 서비스를 펼 수 있는 가능성은 책, 다시 말해 소장 자료가 바탕이다. 지난해 전국 600여 도서관이 새로 산 책은 580여만 권이다. 한 도서관에 평균 약 9000권인데 지역별로 살펴보면 편차가 심하다. 가장 많은 책을 산 지자체는 경기도로, 한 도서관에 평균 1만7000여 권이다. 이를 신간으로만 가정하면 연간 국내에서 출간되는 4만여 종의 단행본 중 25%쯤을 구비한 셈이다.

반면 지난해 산 책이 평균 5000권 안팎에 그친 지자체도 일곱 곳이다. 도서관이 사는 책은 소비재가 아니라 자본재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도서관이 산 1만원짜리 책 한 권을 10명의 이용자가 본다면 이것만으로도 10만원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공공도서관 관련 정책이 정부부처 가운데 현재의 교육과학기술부에 해당하는 문교부 소관이었다. 이런 시기에 만들어진 도서관은 지금도 각 시·도 교육청이 운영한다.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자체들이 설립과 운영에 가세했다. 이후로 전국의 공공도서관 수는 빠르게 늘기 시작했는데 더 빠르게 늘어난 게 이용자 수다. 90년대 말 연간 8000여만 명이던 것이 이제는 연간 2억 명이 넘는다. 늘어 가는 이용자 규모만큼이나 공공도서관도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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