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날씨는 변덕 부려도 우리 사이는 늘 쾌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지난달부터 격주휴무제가 실시됐지만 주말에 남편 얼굴 보기는 오히려 더 힘들었어요."

지난달 4일은 신경섭(52.(右)) 기상청 예보국장의 생일이었다. 아내인 권원태(50) 기상청 기상연구소 기후연구실장은 조촐한 생일상을 준비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태풍 '민들레'가 북상했고, 남편은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생일파티는 비상근무 이후로 미뤄졌다.

이들 부부의 올 여름은 이런 일의 연속이었다. 주말마다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찾아왔고, 찜통더위가 사람들을 괴롭혔다. 기상청에 근무한다는 원죄(?) 때문에 잦은 비상근무를 탓하기는커녕 짜증스러워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지내야 했던 나날이었다.

서울대 기상학과 출신인 신 국장과 서울대 사대 지구과학과를 졸업한 권 실장은 캠퍼스 커플이다. 1980년 결혼한 이들은 미 일리노이대와 텍사스 A&M에서 함께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았다. 자녀(1남1녀)를 키우느라 아내의 공부가 늦어지자 신 국장은 박사학위를 딴 뒤 박사후 과정을 2년 더 했다.

88년 귀국한 신 국장은 시스템공학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취직했고, 1년쯤 뒤 기상청에서 4급(서기관)으로 특채하겠다고 해 자리를 옮겼다.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기상청장이 "부인도 기상학 박사라며? 기상청에서 함께 일하게 해도 괜찮겠나?"라고 물었다. 그래서 둘은 같은 직장에 다니게 됐다.

신 국장은 "내 업무가 1주일 이내의 기상 상태를 알아맞히는 단.중기적인 것인 반면 아내의 업무는 기후변화 연구 등 장기적인 과제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자연히 이론적인 부분은 아내가 더 강하다는 게 신 국장의 설명이다.

저녁 때면 집에서 느닷없이 기상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신 국장이 세미나 같은 데를 다녀온 뒤에는 어김없다. 새로 발표된 기상 관련 이론이나 개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아내에게 물어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내는 교사 경험(대학 졸업 후 한때 중학교 교사로 근무)이 있어서 그런지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잘해요."(신 국장)

"설명은 무슨…. 괜히 겸손을 떠느라 그러는 거지요. 기상청 근무라면 역시 단기예보 쪽이 생동감이 있어요. "(권 실장)

아내는 "팔장 끼고 다닐 줄 알고 같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조직이란 게 그렇지 않았다. 대놓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어도 괜히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하루 한번 쯤은 직장에서 마주치지만 말도 안 건네고 눈인사만 할 뿐이라고 한다.

"한번은 모처럼 같이 점심이나 하려고 직장에서 좀 떨어진 식당에 갔어요. 그런데 그날 따라 왜 그렇게 직장 동료들이 많이 왔는지….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권 실장)

글=이용택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