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준조세, 기업들은 괴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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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민의 정부 들어서도 준조세 (準租稅) 관행이 여전해 기업들의 불만이 높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회의에는 요즘도 굵직굵직한 기부금 요청건이 자주 안건으로 오르고 있으며 한해 60억원을 '사회공헌회계' 로 잡아 집행을 하지만 예산이 모자라 따로 성금을 걷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또 어느 재벌그룹은 정부와 사회단체로부터 기부금 요청을 받는 건수가 한해 1백여건에 이르며 이를 엄격히 심사해 지원해도 한해 1백억원을 넘길 때가 많다고 실토했다.

정부는 준조세부담이 문제가 될 때마다 이의 시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징수방법만 관청접수가 아닌 사회단체 직접 징수로 바뀌었을 뿐 준조세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준조세는 기업에 강제적으로 안기는 경제적 부담 중 조세를 제외한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법령상 부담의무가 없는데도 자발적이라는 명목 아래 사실상 부담이 강제되는 기부금이 항상 문제다.

이 기부금은 형식상으로는 자발적인 헌금.성금.찬조금.후원금 등의 명목으로 표현되지만 실제적으로는 공권력이 직접.간접으로 개입돼 강요.할당.의뢰.권유 등의 방법으로 그 모금이 강제성을 띠고 있다.

무분별한 기부금품 모집을 규제하기 위해 95년 기부금품 규제법이 제정됐고 이 법에 따라 기부금품 모집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조항을 광범하게 둠으로써 기부금규제는 실익이 거의 없는 상태다.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준조세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물론 만만치는 않다.

그럴수록 그 과정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비료성금 1백억원 기탁을 재계에 요구한 일만 해도 그렇다.

재계가 모금에 동의는 했지만 얼마나 자발적인지는 자못 의심스럽다.

구조조정이다, 부채비율 축소다 해서 쫓기는 상황에서 5대 그룹이라고 해도 스스로 10억원씩 성금을 내기는 쉽지 않다.

감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준조세부담은 공과금 10조원에 성금.기부금 2조원을 합쳐 연간 12조원에 이른다.

중소기업의 경우 업체당 연간 1억원꼴이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이런 기업외적 비용부터 덜어줘야 한다.

감사원이 부정방지대책 차원에서 준조세 개선책을 마련하고 행정편의 목적의 부담금 신설이나 관 주도 행사비의 기업전가행위 등을 집중 감사키로 한 것은 당연하다.

조세의 성격이 강한 준조세는 조세로 전환하고,징수되지 않고 있는 부담금은 폐지하고, 성격이 비슷한 기금 및 부담금은 통폐합해 준조세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도 걸맞고 경쟁력 위주의 기업구조조정을 돕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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