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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교육개혁] 2. 늘어나는 재택교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학교 갈 시간이 없어요. " 미국 알래스카주에 사는 케이틀린 스턴 (15) 양은 지난해 하반기의 대부분을 고향인 헤인즈에서 흰머리 독수리를 연구하며 보냈다.

평소 동물의 생태에 관심이 많았던 스턴은 자원해 한 생물학자의 조수가 됐다. 그녀는 요즘 6개월 이상 관찰한 독수리의 생태 보고서를 쓰느라 여념이 없다. 책으로 출판할 계획도 세워놓았다.

그렇다고 스턴이 다른 공부를 팽개치고 동물의 세계에만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 집에서 공부를 한다.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공립고교 1년 과정의 정규과목 수업을 받는다.

선생님은 어머니. 전직 교사인 어머니 메건은 8년전 스턴이 학교 교과과정의 경직성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그녀를 자퇴시켰다.

스턴은 50분 단위로 학습주제가 바뀌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새로운 것을 접하면 호기심이 충족될 때까지 매달리는 스타일이기 때문. 따라서 재택 (在宅) 교육은 교과목의 한 장 (章) 을 완전히 마칠 때까지 수업을 계속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대1 수업방식이어서 학습효율도 높다.

교재는 학교에서 쓰는 것과 같은 교과서와 참고서. 재택교육을 위한 통신판매 서비스를 이용, 정기적으로 새로운 교재와 교습방법을 전달받는다.

선진 각국에선 스턴과 같은 재택교육 (홈스쿨링) 사례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홈스쿨링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부모에게 교육을 받는 청소년 수가 1백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10년전에 비해 5배나 증가한 수치다.

미국만은 못하지만 영국.일본 등지에서도 획일적인 제도교육의 대안으로 재택교육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영국은 약 1만 가정, 일본은 6천~7천 가정에서 재택교육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에서는 '대안교육 (Education Otherwise)' 이라는 전국 규모의 재택교육 단체가 활동중이며 일본도 '등교거부를 생각하는 전국 네트워크' 등 10여개의 관련 모임이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재택교육은 일부 종교적 원리주의자나 '왕따' 등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만의 영역에 속했다.

그러나 요즘은 학생의 개성과 적성을 무시한 천편일률적 공교육에 맞서는 자녀교육의 한 방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경우 몇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93년 부모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의 모든 교육과정을 집에서 가르치는 것이 합법화됐다.

특히 최근 교내 총기난사 사고나 마약.음주.섹스.폭력 등 학교생활의 어두운 측면이 부각되면서 많은 부모가 재택교육을 택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인터넷과 컴퓨터를 활용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보급돼 학교교육과의 격차를 메우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재택교육 부모들간에 정보를 교환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협력모임도 많이 생겨났다.

홈스쿨링의 교육효과는 일반 학교교육에 비해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

메릴랜드 주립대 교육자료연구소가 지난달 홈스쿨링 학생들의 학력평가 성취도를 조사한 결과 평균 70%선으로 일반학생 성적 (평균 50%) 을 크게 웃돌았다.

그러나 재택교육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적절하고 체계적인 학문적 기초나 사회적 능력을 제공하지 못하리라는 우려도 있다.

특히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적어 사교성이 결여될 수 있다는 비판이 많다.

부모가 쉴 틈 없이 자녀교육에 매달려야 하므로 섣부른 재택교육은 가족관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자신들이 역부족임을 깨달은 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복귀시키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많은 재택교육 부모들은 자녀들이 보이스카우트.4H.스포츠단체 등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사회성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재택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사회나 학교와 연계하는 경우도 많다.

재택교육이 늘자 대학들의 자세도 달라지고 있다.

미 하버드대는 최근 재택교육생들의 입학신청 사정을 위해 전담 직원을 배치했다.

다른 대학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시리즈 취재팀]

▶국제부 = 김동균 (팀장). 이철호. 최형규. 이훈범. 김현기 기자

▶특파원 = 김석환 (모스크바). 배명복 (파리). 신중돈 (뉴욕).김종수 (워싱턴) , 오영환.남윤호 (도쿄) , 유상철 (베이징).진세근 (홍콩) 기자

▶해외취재 = 민병관. 권영민. 이상일. 이규연. 강서규. 정선구. 예영준 기자

▶사회부 교육팀 = 오대영.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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