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청문회 계기로 본 세종시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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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종촌리의 한 야산 정상에 설치된 ‘밀마루 전망타워’에서 바라본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 현장. 총 22조5000억원의 사업비 중 5조4000억원이 이미 투입됐다. [연기=연합뉴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세종시 문제가 정치권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세종시 논란은 왜 시작됐고 쟁점은 뭔지,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

2002년 9월 30일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는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행정도시 이전 공약을 발표했다. 2009년 하반기 정국의 최대 이슈인 ‘세종시 논란’이 촉발된 순간이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는 현실성 없는 대책”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충청권 표심은 곧바로 반응을 나타냈다. 두 후보의 득표 차(57만 표) 가운데 25만 표가 충청에서 갈렸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신행정수도 건설을 주제로 지난 대선에서 좀 재미를 봤다”고 할 정도였다.

노무현 정부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밀어붙였다. 정부 출범 직후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기획단을 발족해 이전 예정지역과 개발절차 등을 담은 ‘신행정수도건설 특별조치법안’을 마련했다.

애초 국회는 반대했다. 특히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반대가 심했다.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위원회 설치 구성안’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란표로 부결됐다. 충청권은 거세게 항의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반대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작업을 벌였다. 국회는 2003년 12월 본회의를 열어 찬성 167표, 반대 13표, 기권 14표로 법안을 가결했다. 이듬해의 4·15총선을 의식한 각 당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결과였다. 법안이 통과되자 신행정수도 건설 사업에 날개가 달렸다. 사업 계획이 발표되고, 연기·공주 지역이 최종 후보지로 결정됐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제동을 건 곳은 헌법재판소다. 헌재는 2004년 10월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은 “헌재를 믿었다가 암초에 걸려 투구가 찌그러진 것”이라고 했다. 행정수도 이전 사업은 벽에 부닥쳤다.

그러자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후속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회도 특위를 구성해 ▶연기·공주 지역 활용 ▶자족도시 건설 등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여야는 연기·공주 지역에 12부4처2청을 이전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건설에 합의했다. 2005년 3월 행복도시 건설법을 찬성 158표, 반대 15표, 기권 4표로 통과시켰다.

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이었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행복도시 건설법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됐으나 각하됐다. 행복도시 사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7월 기공식을 하고 공사에 착수했다. 대선 국면과 맞물리면서 대선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명품 행복도시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도 큰 논쟁이 되진 않았다. 지난해 김문수 경기지사와 이완구 충남지사의 수도권 규제완화 논쟁 때 잠시 논란이 된 정도다. 올 1월엔 주변지역 지원사업비 108억원 중 국비 86억원이 집행됐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지난 7월 국회 행정안전위 법안소위에서 세종시를 특별자치시로 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행복도시는 아주 효율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발언으로 논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특히 세종시 이전 대상 기관을 9부2처2청으로 변경 고시해야 하는 정부가 이를 미루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정부 계획에는 변화가 없고 자족방안을 추가로 마련한 뒤에 고시할 것”(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정부의 추진 방침은 변한 것이 없다”(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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