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청년을 위한 밀레니엄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국의 5월은 잘 다듬어진 인재들을 수확하는 계절이다.

미국 전역의 수많은 대학들이 미국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국계 학생들을 학사.석사.박사로 배출하기 때문이다.

나도 딸의 펜실베이니아대 졸업식에서 다시 한번 감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학교 설립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이름을 딴 프랭클린 운동장에 모인 사각모를 쓴 졸업생들이 한명씩 호명되는 것을 들으며 "이렇게 많을 수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수전 박, 찰스 고, 제니퍼 리, 낸시 정, 스티브 최…. " 1천여명이나 되는 문리과대학 졸업생 중 열의 하나는 한국계 학생들인 것 같았다.

이러한 광경은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특히 소위 명문대학에서 매년 반복되고 있다.

줄잡아 거의 1만명에 가까운 한인 청년들이 이렇게 매년 미국대학의 문을 나와 미국 주류사회 전역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인들이 선호해온 의학.법률.예술분야 외에도 투자.금융.자연과학분야 전반과 오랫동안 불모지였던 언론과 정부기관에도 진출하고 있다.

한인들이 성공적인 이민그룹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젊은이들 때문이다.

더 중요한 점은 생활문제 해결에만 매달린 이민 1세대들과는 달리 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일 외에도 지역사회 발전에서 인종간의 화합, 불우이웃 돕기, 북한 식량원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평화봉사단 같은 봉사기관에 참여하거나 캠퍼스.교회, 그리고 졸업 후 서클활동을 통해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미 전국적인 조직을 가진 한인청년들의 단체도 형성되고 있다.

한 예로 지난해 말에 출범한 '범세계 활동을 위한 한국계 미국인 청년연합 (Korean - Americans for Global Action)' 이란 단체는 북한동포 식량원조를 위한 자선음악회를 개최해 10만달러 이상을 모금하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하는 이민 2, 3세들의 활

동은 미국에 있는 약 2백만 한인교포 사회의 영향력을 질적인 면에서 배가시켜줄 것이 틀림없다.

이민의 역사는 어떠하든지 간에 미국을 비롯한 중국.일본.러시아 등에 살고 있는 5백50만명의 교포들은 우리 민족의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인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한민족을 지지하고 있는 듬직한 후원그룹이자 미국이 한국을 만만히 볼 수 없도록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고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우리의 보루다.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해외 인재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교포 청년들과 국내 청년들이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교량을 만들어야 한다.

교포 청년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중국적이나 국내 재산권 문제보다도 그들이 주재국 시민으로, 또 세계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민족의 문화를 익히며 '한국성' 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찾고 결과적으로는 한민족과 국가를 아끼고 돕는 한국계 세계인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민족지속성' 교육을 가장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 지난해 말 향후 5년간 3억달러를 들여 해외에 있는 15~26세의 유대인 청소년들을 6주간 무료로 이스라엘을 방문케 해 문화교육을 시킨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우리도 체계적인 계획 아래 교포 청년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일정기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들은 모국을 배울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을 통해 국내 청년들에게 한인교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을 포함한 세계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미국은 지난 수십년간 풀브라이트 전 상원의원의 이름을 딴 풀브라이트장학금 계획과 케네디 대통령이 창시한 평화봉사단 활동을 통해 미국 청년들이 장기적 안목과 꿈을 기르며 세계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

2000년의 길목에서 우리는 밀레니엄 행사 준비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 논의가 한창이다.

떠들썩한 잔치성 행사보다 '세종대왕 문화교류' 와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해외의 한인 청년들을 불러들여 문화교육을 시작하고 '박정희 연수기금' 과 같은 장학제도를 마련해 많은 국내 청년들을 해외에 내보내는 거시적인 미래투자를 시작할 때다.

구삼열 유니세프 특별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