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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회화에서 뿌리 찾는 중...한국 작가와 작업하며 영감 얻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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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호 04면

1 ‘Kaikai Kiki and Me’(2008), Acrylic on canvas mounted on aluminum frame, 150 x 150 x 5.08㎝

12일 파리 마레 지구에 위치한 에마뉘엘 페로탕(Emmanuel Perrotin) 갤러리.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업화랑인 이곳에서 세계 미술시장의 블루칩으로 꼽히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46)의 개인전 오프닝 파티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오프닝 이전 전시작 대부분이 이미 팔린 덕분에 축제 분위기였다.

세계 미술 권력을 만나다 - 파리 개인전 연 무라카미 다카시

이번 전시 이전에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뉴욕 브룩클린 뮤지엄,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서는 무라카미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그는 제프 쿤스(Jeff Koons)와 프랑스 작가 자그비에 베영 (Xavier Veihan)에 이어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리는 현대 미술 전시의 주인공으로도 발탁됐다. 전시 오프닝에 앞서 그를 만났다.

2 ‘I Recall The Time When My Feet Lifted Off The Ground, Ever So Slightly-Korin-Chrysanthemum’(2009), Acrylic and gold leaf on canvas mounted on board, 150㎝ diametre x 5㎝

-1995년 파리 첫 전시 후 14년이 흘렀다. 그동안 서양 미술계와 대중의 반응에 만족하는가? 이번 전시에 대한 본인의 느낌은?
“나는 현재 파리의 미술 시장이 매우 활기를 띠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아마도 현 프랑스 정부의 미술 시장 진흥 정책이 많은 기여를 한 것 같다. 미국의 갤러리나 작가들도 파리로 전시하러 오는 걸 보면 파리 미술계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전시의 타이밍이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2008년 타임지가 당신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으로 뽑았다. 자신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라고 느껴지는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사실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때 서양에서는 겨우 두 번의 전시를 했을 뿐이었는데, 그런 결과가 나왔다. 사실 일본에서는 그 정도의 반향이 일지 않았었는데 서양에서 오히려 나의 작품을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준 것 같다.”

3 ‘Kanye Bear’(2009), Photo by Florian Kleinefenn

-일본 현대 미술계를 세계에 알리는 것에 많이 기여하지 않았나?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일본 현대 미술을 알리고 일본 현대 미술에 대한 시장을 확장하고 싶어했는데, 현재의 결과에 만족하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질문에 답이 들어 있다. (웃음)”

에마뉘엘 페로탕 갤러리 본관과 분관에서 10월 1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회화 17점, 조각 5점, 비디오 작품 2점 등이 나왔다. 미국 출신의 유명한 래퍼인 케인 웨스트 (Kayne West)가 참여하여 직접 랩을 부른 비디오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유명 작가의 완성작이 나올 때마다 화랑은 오프닝 전에 VVIP에게 먼저 오퍼를 한다. 오퍼도 못 받고 솔드 아웃이라는 소리만 듣는 컬렉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가로 6m 세로 3m짜리 회화 작품으로 220만 달러(약 26억5000만원)였다. 높이 120㎝짜리 조각은 85만 달러(약 10억원)에 팔렸다. 가장 싼 작품은 에디션이 있는 조각 작품으로 4500달러(약 540만원)였다.

-그동안은 늘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My Lonesomecowboy)’나 ‘히로뽕(Hiropon)’ 같은, 다른 모습의 자아로 작품에 나타났었는데,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자화상을 그린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미술 시장의 거품이 꺼진 이후에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 전시된 작품 중 하나에서 보이듯, 나를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와 히로뽕처럼 내가 창조한 캐릭터 속에 그려넣어 봄으로써 나 자신과 거리를 두고 나를 지켜보게 되었다.”

-기존 작품에서보다 일본 회화의 전통이 많이 느껴지는 그림들을 선보였다. 당신은 미대에서 일본 전통 회화를 배웠는데, 점점 전통으로 돌아가는 건가?
“지금 나는 한국의 한 작가와 함께 작업하고 있다. 개를 아주 사실적으로 그리는 작가인데 한국의 전통 회화 스타일로 그린다. 나는 그의 그림을 연구하고 영감을 얻어서 작업한다. 이처럼 요즘에는 전통 회화를 발전시키면서 뿌리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여전히 아주 현대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통으로 돌아가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앞으로 내가 보여줄 작업들에서 이런 요소들을 찾게 될 것이다.”

무라카미는 일본 특유의 문화 ‘포쿠(POP+OTAKU)’가 일본의 문화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 장담했다(OTAKU란 특정 분야에만 집착하는 문화 소비자나 전문지식 소유자를 가리키는 말. 하지만 만화나 비디오 게임에 몰입해 사회와 고립된 사람을 가리키는 부정적 의미도 있다). 얼마 전 홍콩 크리스티 강연에서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는 전쟁에 대한 수치심에서 태어났다. 전후 세대들이 이를 잊기 위해 전통과 거리를 두면서 무언가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욕구에서 오타쿠에 몰입했다”고 분석했다. 오타쿠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었다.

“우선 포쿠라는 말을 이루는 팝(pop)과 오타쿠(OTAKU)는 서로 상반된 개념이다. 팝 문화가 대량 소비 사회에서 탄생하고 소비 문화의 축제 속에서 태어났다면 오타쿠는 ‘가난’속에서 피어난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극과 극인 두 문화를 나는 하나로 결합하면서 이를 평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창조한 ‘수퍼플랫(Superflat·아주 평편함)’이란 컨셉트다.

흔히 일본이 위계 질서로 경직된 사회라고 말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일본은 서양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균등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일본인은 남들이 나보다 잘 산다고 생각하면 그 수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말하는 ‘플랫’의 개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일본처럼 전쟁을 경험한 나라에서 이러한 플랫의 개념을 적용시키기가 더 쉽다. 그것은 우리는 가난하지만 우리도 삶을 즐길 수 있고,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타쿠는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은 일본뿐 아니라 다른 사회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덧붙여 오타쿠 문화는 객관적으로 우아한 문화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이 있다. 이것은 마치 뉴욕의 벼룩시장에서 가짜 그림을 파는 것과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이 가짜 그림들을 좋아하고 가짜인 줄 알면서도 이것들을 산다는 것이다. 오타쿠 역시 그 하나의 개념에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한국에서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이름이 점점 알려지고 있지만 반일 감정도 여전하다. 만약 한국에서 전시를 하게 된다면 당신의 작품을 통해 어떠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
“여전히 두 나라 사이에 정치적인 면에서 예민한 감정이 남아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한류를 보라. 일본의 가정주부들이 한국의 멋진 남자 배우들의 사진이 들어간 화보집을 비싸게 사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일본 남자들에 비해 한국 남자들은 굉장히 섹시한 것 같다. (웃음). 나의 작품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고자 하기도 전에 이미 화해와 교류가 무르익지 않았나? 아직 한국에서의 전시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오길 바란다.”

사진 All Artworks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Galerie Emmanuel Perrotin, Paris


런던 크리스티 인스티튜트에서 서양 미술사 디플로마를 받았다. 현재 파리에 살면서 아트 컨설턴트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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