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급옷 로비' 의혹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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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장관 부인들이 거액의 외화밀반출 혐의로 구속된 최순영 (崔淳永)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으로부터 수천만원대 고급 옷을 선물로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사정 당국은 지난 2월 이에 대한 조사를 한 후 사실무근이라며 내사종결했던 것으로 드러나 조사내용이나 처리과정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같은 사안을 두고 이처럼 상반되게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양측 주장이 완전히 달라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장관 부인들은 한결같이 옷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한다.

어떤 이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고 있어 다툼이 법정으로 번질 기세다.

그러나 崔회장 부인측은 스스로 선물한 것이 아니라 장관 부인들이 옷을 골라간 후 거액의 옷값을 내달라고 연락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누구 말이 옳은지 아리송할 뿐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한 단면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우선 장관부인들과 대기업회장 부인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상류층에서 이같은 시비가 벌어지는 자체가 낯뜨거운 추태다.

입으로는 과소비 억제를 외치면서도 남몰래 고급.고가품 선호 풍조로 위화감을 조성하는 비뚤어진 상류층 문화행태를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장관 부인들이 떼를 지어 강남의 고급 의상실을 드나든 것이 사실이라면 도덕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례없는 경제난을 맞아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특히 국무위원급 공직자 부인들의 자원봉사활동 모임인 수요회가 '잘못된 만남' 의 계기가 된 것처럼 전해지는 것은 듣기가 거북하다.

만일 崔회장측에서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중에 이를 무마할 목적으로 장관 부인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면 이 점은 범죄 차원에서 수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오간 선물은 바로 뇌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선물 시점과 崔회장의 신병처리 시기, 선물을 받은 대상자가 수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직에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규명해야 할 것이다.

현직장관 등 고위공직자가 관련된 뇌물의혹 사건을 대통령비서실 산하의 비법률기구인 사직동팀에서 처리한 것도 잘못이다.

사건의 진실은 드러나지 않은 채 온갖 루머와 추측이 난무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검찰이 공개수사에 나서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

아울러 청와대 당국은 이미 조사를 끝낸 내용만이라도 하루빨리 가감없이 공개해야 한다.

사건 내용이 공론화되면서 나날이 의혹이 커지고 있는데도 당국이 조사 결과를 쉬쉬하는 것은 자칫 축소은폐 의혹까지 받게 마련이고 국민의 알권리 침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같은 사건의 경우 공직자의 프라이버시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함은 말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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