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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생명과 사랑의 이 5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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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월의 달력도 이제 거의 마지막 한 주만을 남기게 됐다.

5월은 어린이 날.어버이 날.스승의 날.성년의 날이 있어서 가족과 어린이 성장과 교육을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흔히 가정의 달로 부르는 때다.

산이 온통 신록의 푸름으로 덮였다.

놀라운 생명력의 약동이다.

어린이 날.어버이 날.스승의 날이 5월에 잇따르는 까닭도 이러한 생명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생명력의 원천이며, 어버이와 스승은 그 어린이에게 생명을 주고 길러주고 교육으로 성숙시키는 사랑의 힘의 뿌리다.

그런 점에서 5월은 가정의 달이기에 앞서 하느님의 놀라운 산물인 '생명과 그 사랑을 노래해야 할 계절' 이라야 옳다.

참으로 '제일 좋은 시절'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좋은 시절에, 세상은 생명과 사랑을 파괴하고 유린하는 일들로 가득하다.

극단적인 이기주의, 윤리적 불감증, 종교, 심지어 갈등과 증오…. 이런 것들이 이 시대의 비극을 양산하고 있는 주요 원인이다.

이를테면 한 국가 안에서 벌어진 '인종청소' 라는 반 (反) 인권 현실과 그런 행위를 응징하고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제3국들이 벌이는 공격, 그 때문에 또 다른 무고한 백성의 희생이 무수히 진행되는, 지금 발칸반도에서 진행 중인 기이한 살육전쟁도 얼마든지 그 사례가 된다.

전쟁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율이라 해도 좋을 우리나라의 인공임신중절, 그 '침묵의 대학살' 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 인간복제는 하느님 침범

태어나지 못한 채 '살해' 되는 태아가 연간 2백만명에 이른다는 추산이다.

이 땅에서 윤리의식의 황폐화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너무나도 태연히 인간 생명을 빼앗으면서, 그 '살인행위' 의 죄악에 대해 무감각하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기적 삶이 낳은 가장 이기적인 현상이 이것이 아닌가 한다.

하느님의 창조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 복제 시도는 극단적인 과학우월주의를 드러내는 인간의 오만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일에 개입하려는 인간 복제는 '우주와 세계 조화를 파괴하고 윤회사상에 위배되는 것' (불교의 입장) 이며, '천륜으로 보나 자연섭리로 보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 (유교의 견해) 이다.

미국의 작은 도시 리틀턴 컬럼바인 고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 그 자살한 범인 중 하나인 18세 소년의 유서는 "나를 모욕하고 나를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깝다는 당신들의 아이는 죽게 될 것이다.

그들은 죽는다…. 당신들 교사와 학부모 때문이다" 라고 기술했다.

교사와 학부모들을 향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증오심이 들끓고 있다.

그 교사와 학부모들이 학생.자녀들에게 사랑보다 이기주의를 더 가르치고 학습시킨 결과가 바로 이런 무차별 총격과 대량살상극으로 나타난 것은 아닌가, 우리는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인간관계나 사랑, 또는 인간적 품위와 같은 덕목에 앞서 '점수' 와 '경쟁' 과 '이기심' 만을 가르치고 자극시켜온 것이 우리의 가정이요 학교요 사회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생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인간의 생명이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것' 이라는 인식의 공유가 절실하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생명유지라는 숭고한 임무를 인간에게 맡기시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품위에 알맞은 방법으로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셨다" (사목헌장 51항) 고 하는 것이,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다.

*** 생명은 하느님의 것

생명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그 생명을 기르고 가르치고 숭고한 인간으로 성장시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도 바오로는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 (에베소6장4절) 라고 가르친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 5월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내는 5월이기도 하다.

5월은 계절적으로는 언제나 '제일 좋은 시절' 이다.

온갖 비극과 갈등과 살육을 떨쳐버리고, 생명과 사랑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새 밀레니엄을 열어가기를 이 5월이 다 가기 전에 기약하자.

장덕필 가톨릭중앙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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