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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겐 ‘기부 DNA’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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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유년 시절에 극심한 가난을 겪다 이를 악물고 자수성가했다. 성공한 기업인이 된 뒤에도 자린고비처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어떤 사람의 삶이 이러할까. 바로 고액 기부자들이다.

본지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 11명을 심층 분석했다. 7명은 대면 또는 전화 인터뷰 했고, 4명은 서면 인터뷰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자료를 활용했다. 그 결과 고액 기부자의 DNA 5개를 추출했다. ▶유년 시절의 가난 ▶자수성가한 기업인 ▶근검절약 ▶선(先) 기부 후(後) 가족 동의 ▶돌다리 두드리듯 꼼꼼한 기부 등이다.

우재혁(66) 경북타일 대표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했다. 껌팔이·신문배달·넝마주이 등 안 해본 게 없다. 야간학교라도 가려고 했으나 포기하고 타일업체 심부름꾼으로 취직했다. 우 대표는 “어렸을 때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은 적이 없다. 어려운 이웃이 생각나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11명 중 5명이 우 대표처럼 어려운 유년 시절의 기억 때문에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1965년 스무 살 때 홀로 부산으로 건너가 메리야스 가게에 취직했습니다. 그게 내 커리어의 시작입니다.” 1억원을 기부한 세정그룹 박순호(63) 회장은 맨손으로 기업을 일궈낸 사업가다. 20대를 바쳐 의류 생산 노하우를 터득했고 이를 토대로 티셔츠 생산에 뛰어들어 오늘의 회사를 만들었다. 박 회장처럼 자수성가한 기업인은 8명이었다.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 1층 유닉스코리아 사무실. 남한봉(68) 회장의 책상 한편 낡은 바구니에 이면지가 가득하다. 그의 체크 무늬 양복은 한눈에도 낡아 보였다. 양복 세 벌을 10년 돌려 입고 있다. 구두는 코가 해어지고 군데군데 흠집이 나 있다. 3년째 한 켤레를 신고 있다. 그는 “그 이상이 뭐 필요 있나”라고 말한다. 우재혁 경북타일 대표, 류시문(61) 한맥도시개발 회장, 박순용(55) 인천폐차사업소 회장도 ‘생활은 자린고비, 기부는 큰손’에 해당된다.

고액 기부자들은 돌다리 두드리듯 꼼꼼하게 기부한다. 원영식(48) 아시아기업구조조정 회장은 기부 지역(서울 중구)과 대상자(차상위계층이나 소년소녀가장)를 지정했다. 기부 후에도 제대로 돈이 갔는지를 확인했다. 4명의 기부자들은 먼저 기부한 후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려 동의를 구했다. 인천폐차사업소 박순용 회장은 “일일이 동의를 구하다가는 실행에 옮길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효진 홍보실장은 “주식·부동산을 쉽게 기부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등의 제도적 지원을 확대하고 기부자의 뜻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고액 기부가 늘 것”이라고 말했다.

 홍혜진 기자 

◆아너 소사이어티=2007년 12월에 설립된 개인 고액기부자 클럽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이 가입한다. 현재 회원수는 1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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