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drink] 막걸리 트랜스포머 빛낸 6가지 ‘디자인 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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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주 사장은 “막걸리가 ‘유행 코드’보다는 ‘문화’로서 대중에게 인식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술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부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6명의 문화인은 각각 막걸리를 마신 후 느껴지는 순간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스케치는 단순했지만 각자의 영역에 충실한 아이디어와 유머감각이 돋보였다.

건축가 승효상씨와 사진가 김용호씨는 백자를 소재로 병과 잔을 디자인했다. 뽀얀 우윳빛, 아이들의 발그레한 볼 색깔 같은 분홍, 깊이 있는 낙엽색 등 막걸리의 다양한 빛깔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역시 백자가 제일 좋다는 게 이유다. 승씨는 24㎝의 병 길이와 손에 쥐기 좋은 위치도 표시했다. 쇳대박물관의 최홍규 관장은 지금의 막걸리가 ‘싸구려 술’로 여겨지는 데는 흔한 플라스틱 소재가 한몫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그래서 쇠를 정교하게 마감해서 병과 잔에 낄 수 있는 홀더를 만들 것을 기획했다. 물론 교체 가능한 홀더다. 6명 중 유일하게 술을 못 마시는 미술가 김을씨의 스케치는 유머가 넘쳤다. 그는 ‘술과 여자가 함께하는 선비들의 풍류’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여자의 몸처럼 생긴 병’을 생각해냈다.

건축가인 민경식 소장은 공학적이고 세밀하게 막걸리 병과 잔 ‘설계도’를 그렸다. 배가 볼록한 이 술병과 잔은 흔들리는 게 특징. 막걸리는 흔들어 따라야 제 맛이라는 점에 착안, 슬쩍 건드리면 저절로 흔들리는 병과 잔을 디자인한 것이다. 고정시켜 놓으면 걸쭉한 부분은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맑은 부분만 따라 마실 수 있다는 점도 아이디어다.

현재 밀라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탈리아인 건축가 안드레아도 참여했다. 이 전시회가 있기 바로 전 서울을 방문했던 안드레아는 새벽까지 막걸리를 마시며 한윤주 사장과 막걸리가 유럽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밀라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스케치를 그렸다고 한다. 안드레아의 아이디어 역시 민 소장처럼 ‘흔들림’에 주목했다. 오뚝이처럼 툭 건드리면 저절로 술이 섞이면서 시각적으로도 재미를 유발시키는 디자인이다.

한 사장은 “막걸리가 깊이 있는 맛과 가치를 지닌 술이라는 건 한국인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이젠 담는 그릇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부가 1년에 한 번씩 ‘올해의 막걸리’를 선정하고 이에 어울리는 상표·병·잔 디자인을 공모하면 어떨까. 현대인은 술을 마실 때도 디자인을 안주 삼는다.

서정민 기자


올 추석, 가족과 함께 마시면 좋을 추천 막걸리

3일 ‘막걸리 트랜스포머’ 행사에 선보였던 막걸리 중 기자와 소믈리에 엄경자씨가 공동으로 추천하는 막걸리다. 엄경자씨는 와인 전문가지만 막걸리에 관심이 많다. 이날 행사를 위해 와인처럼 향·맛·산도 등을 비교할 수 있는 ‘시음 체크 표’를 만들고 분석 결과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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