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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청소년보호위 강지원 위원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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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청소년보호위원회 강지원 (姜智遠) 위원장은 멜빵을 즐겨 메고 색깔있는 와이셔츠를 입는 등 옷차림이 남다르다.

서울지검 검사 시절 '냉혈검사' 로 불리던 그가 10여년 만에 사람좋고 털털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인자한 모습으로 바뀐 것도 모두 청소년문제를 다루면서 생긴 변화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청소년 문제에 관한 그의 지적은 매섭고 직설적이다.

그는 영상.활자매체와 유흥업소 등 청소년을 둘러싼 모든 유해환경을 감시.적발하는 청소년보호위의 초대 사령탑을 맡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달' 이자 '청소년의 달' .정부 세종로청사 3층 사무실에서 姜위원장을 만나 우리 청소년 문제의 현황과 대책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만난사람 =사회부 김기평 차장]

- 청소년의 달을 맞아 무척 바쁘시죠?

"요즘 '왕따 (집단 따돌림)' 가 어떤 것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모든 부처가 유흥업소 규제를 풀고 문화.정보.관광산업의 발전을 외치는 등 산업논리와 발전논리가 우선인데 청소년보호위가 사사건건 토를 달고 있으니 누군들 좋아하겠습니까.비디오.게임.PC통신. 인터넷 등에서의 음란.폭력물은 심각한 수준이며 비디오물 등의 선정.폭력성을 막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컴퓨터를 이용한 인기 게임물 '스타크래프트' 의 경우 공연예술진흥협의회에선 초.중.고교생이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했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는 청소년이면 다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결국 처음보다 폭력적인 장면들을 삭제한 뒤에야 중학생 이상이면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결정됐지요. 이건 한 예에 불과합니다. 유흥업소.비디오방.노래방 업주들의 압력은 대단합니다. 요즘은 '외로운 투사' 의 심정인데 무척 힘이 드는군요. "

- 날로 심각해져가는 청소년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청소년들의 폭력성입니다. 일본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청소년이 교사 폭행을 시작했습니다. 국내에 언제 상륙할까 우려했었는데 지난해부터 사회문제화했습니다. 또하나의 문제는 성 (性) 의 조숙화 현상과 나이 어린 청소년을 여종업원으로 고용하는 우리 사회의 특이한 '영계 산업' 문화입니다. 청소년들이 예전보다 빠른 속도로 탈선하고 있고 이들 청소년에 대한 인권유린.착취가 심각합니다. "

-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성의 조숙화는 정보매체의 발달과 개방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봅니다. '영계 산업' 문화는 버려야 할 유흥문화와 남녀차별적인 남성의 이중적 사고 등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유흥업소가 많고 특히 주택가까지 침투한 것은 말이 안됩니다. 나이 어린 여종업원을 소개하는 보도방.무허가 직업소개소가 있고 월 3백만원을 보장한다는 유흥업소 구인광고가 나오는 나라가 우리 말고 어디 있겠습니까. "

- 무슨 대책이 없는지요.

"우선 단란주점 등을 주거지역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법을 고쳐서라도 주택가에서의 신규허가는 막아야 합니다. 업주들이 관청에 '건의' 해 관련법규를 고친 뒤 단란주점 칸막이를 설치하는 등 집요하게 노력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성인업소 위락지구 집중화' 를 추진해야 합니다. 청소년보호위 차원에서 이에 대한 용역을 관련 학회에 맡겼습니다. 도시마다 위락지구를 정해 그곳에만 유흥업소 신규허가를 내 주고 기타 지역은 허가를 안해주는 겁니다. 기존업소의 경우 10년 정도 유예기간을 줘 영업을 보장하고 그 이후엔 이전토록 하는 방안입니다. 공청회와 관계 부처와의 협의 등을 거쳐 올해 안으로 개정안을 마련해 내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 청소년문제가 어디서 비롯됐다고 보시는지요.

"가정교육의 실종이 문제의 발단입니다. 권위주의.억압주의.지시명령.강요의 수직적 가정에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다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결혼한 후에도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풍조는 분명 잘못됐습니다.

서구의 경우 고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자신의 용돈을 스스로 조달하는 등 자립심을 키우는 개인존중의 수평적 가족관이 형성돼 있습니다.

한국의 수직적인 가정과 서구의 수평적 가정에서 장점들을 살려 한국형 가정교육의 새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청소년보호위는 지난 1월 가정교육분과위를 새로 만들어 이에 대해 연구중입니다. "

- 청소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군요.

"서울지검 특수부.공안부 검사 시절 '냉혈검사' 로 알려졌습니다. 누구보다 구속을 많이 시켰고 구형량도 늘 무거웠으니까요. 그러다가 10여년 전 평검사 때 소년법 개정작업에 차출됐는데 업무에 집착하는 성격이어서 소년법 연구에 들어가 국내외 소년법은 물론 철학.심리학.범죄학 등 관계 문헌을 모조리 읽고 공부하게 됐습니다. 어느날 문득 형량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형량 이전에 마음에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출세주의적 인생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아직도 가정.학교.사회에서 많은 기성세대가 자녀들에게 출세주의적 시각을 강요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 청소년들이 유흥업소 등 주변의 나쁜 환경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청소년들은 산과 들과 바다로 나가야 합니다. 지금 청소년들은 '방' 구석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노래방.만화방.비디오방.PC방.인터넷방.휴게방.전화방.소주방 등 밀폐된 공간를 찾는데, 이런 곳에서 벗어나 들판으로 나가야 합니다. 등산이나 스포츠를 통해 호연지기 (浩然之氣) 를 기르고 음악.예술 등 적성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

- 가정에선 자녀들에게 어떤 식으로 대합니까.

"두 딸 모두의 자율과 적성을 중시합니다. 전에는 딸들에게 강요하고 야단치며 체벌을 했습니다. 한번은 딸이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몹시 화가 나 딸을 침대에 던졌는데 두고두고 기억을 해 지금은 크게 반성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는 때리거나 큰 소리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애들을 설득시키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 과정에서 애들이 감동을 받고 용서하는 모습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지요. "

- 잦은 TV 출연 등은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은 아니었는지요. 또 언론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TV 출연에 대해선 법조계나 청소년보호위 내부에서 처음엔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해서라도 청소년문제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또 주변에서 출마 권유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청소년사업을 계속할겁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 스캔들 보도 때 청소년은 보지 말라고 한 뒤 노골적인 표현들을 썼는데 미국 등 선진 언론에선 청소년을 생각해 이런 보도를 자제하고 있는 점이 앞으로 참고됐으면 합니다. "

◇ 경력 ▶ 49년 출생 ▶67년 경기고 졸업 ▶72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행정고시 합격 ▶76년 사법시험 (18회) 합격 서울.전주지검 등 검사 ▶82년 결혼 (김영란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와의 사이에 두 딸) ▶89년 서울보호관찰소장 ▶95년 사법연수원 교수 ▶현재 서울고검 검사.청소년보호위 초대 위원장 (겸직) , 한국법심리학회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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