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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의장 부친 '일본군 지원 독려' 글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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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지리산 화엄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신상묵씨의 "서남지구 전투경찰 사령관 실적비"(左). 그 옆은 신 의장 가족이 만든 보조비. 구례=양광삼 기자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부친 신상묵씨가 일본군 헌병으로 복무하던 시기에 조선인들의 일본군 지원입대를 독려하는 글을 당시 월간지'삼천리'에 기고한 사실이 18일 밝혀졌다. 또 신씨의 공적비가 전남 구례와 제주도 한라산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씨는'삼천리'1941년 1월호에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신상묵씨의 창씨 개명 이름)라는 이름으로 '지원병 일기'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잡지에서 신씨는 "물은 얕은 데로 흘으며(흐르며)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같이 일본 남자인 우리들이 폐하의 군인이 되는 것은 외레이할(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내선일체가 되는데 가장 먼저 할 것은 지원병이 되는 것"이라며 "참으로 황국신민이 될 생각이 있거든 이 훈련소로 오시요"라며 조선인들의 일본군 지원을 독려했다.

이와 함께 본지 취재팀의 확인 결과 지리산국립공원 화엄사 입구 '시(詩)의 동산'에는 가로 50㎝.높이 2m 크기로 그의 공적을 한자로 기록한 '서남지구 전투경찰사령관 신상묵 실적비'가 보존돼 있다.

당초 화엄사 경내에 있었으나 받침돌이 깨지는 등 방치되면서 신 의장 가족이 사찰과 협의해 2000년 5월께 3㎞ 떨어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신 의장 가족은 비석을 옮기면서 바로 옆에 한글로 보조비를 세워 내용을 알기 쉽게 했다. "그대 오시어 난을 평정하고 백성과 만물을 소생시켜 공을 풍성히 쌓았다. 울음이 웃음 되고 칭송이 하늘을 찌르니 이를 작은 돌에 새겨 영원히 밝히고자 하노라. 단기 4287년(1954년) 4월 17일 구례군민 일동".

보조비의 뒷면에는 "동족상잔의 비극 6.25 빨치산 전쟁을 인화전략으로 종식시켜 지리산을 둘러싼 국토에 평화를 정착시키고…"라는 공적 내용이 담겨 있다.

한라산 정상에 있는 '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는 신씨가 게릴라 활동이 소강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 54년 9월 한라산을 개방한 업적을 기려 1년 뒤 건립했다. 한라산은 48년 4.3사건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됐었다.

신씨는 4.19직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신씨는 제주.강원 경찰국장에 이어 60년 3월까지 전남도경국장을 지낸 뒤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서남흥업'고문으로 재직 중이던 신씨는 64년'지리산 도벌(盜伐)사건'에 연루돼 산림법 위반 및 국유재산법 위반 등 혐의로 부산교도소에 한동안 수감됐다 이듬해 12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례.제주=천창환.양성철 기자
사진=양광삼 기자<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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