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동아시아의 진정한 ‘우애’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6면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이 오늘 공식 출범한다.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며 집권에 성공한 하토야마 대표의 총리 취임을 축하하며, 그의 등장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하토야마 정권에서 한·일관계가 한 단계 높아지길 기대한다”면서 내년 중에라도 일왕 방한이 이뤄지면 양국 관계에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4월 한·일 정상회담 당시 “일본 천황이 굳이 한국을 방문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데 이어 한층 구체적인 표현으로 일왕을 초청한 셈이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 건너야 할 강이 많은 것이 양국 관계다. 우리는 이 대통령도 말했듯이 일왕의 한국 방문 자체보다 ‘어떤 모습으로’ 방문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독일의 사과와 반성 위에서 유럽 통합이 가능했듯이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일왕 방한이든 동아시아공동체든 모두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왕이 따뜻하게 환대 받으며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일본 측의 노력을 지켜볼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국립추도시설을 건립하겠다는 하토야마 대표의 공약도 우리의 관심사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치인의 망언이나 역사 교과서 문제가 다시 불거진다면 언제든지 한·일 관계는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휘발성 높은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도 지혜로운 대처를 당부한다.

하토야마 대표가 내건 정치개혁 공약이 어느 정도 실현될지는 큰 주목거리다. 전후 일본을 이끌어온 자민당 정권의 관료 중심 국정운영과 부패한 파벌 정치에 대한 염증이 정권교체로 이어진 만큼 그의 정치실험 성공 여부는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특히 그가 야심작으로 추진 중인 ‘국가전략국’ 중심의 국정 운영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관심이 크다.

긴밀하고 대등한 동맹관계로 미·일 관계를 가져가겠다는 공약이 구체적으로 양국 관계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 문제다. 중국 등 아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미국과의 적당한 거리 두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대륙 세력인 중국의 부상이 아무리 눈부시더라도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위해서는 해양 세력인 미국의 임재(臨在)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지만, 선택은 물론 일본의 몫이다.

우리는 하토야마 대표의 한국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잘 알고 있다. 그의 부인은 열성 한류팬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이웃의 환심을 사기 위한 단순한 제스처나 립서비스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의 ‘우애의 철학’이 한·일 관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의 공리공복(共利共福)에 보탬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