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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지·화 초강대국’으로 … 중국, 찬란한 재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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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뚝 솟을 굴> 수퍼파워의 성립 조건은 흡인력이다. 멀리 로마제국에서 대영제국, 그리고 오늘날 미국은 세계의 인재·물자·자금 등을 끌어 모으며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21세기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은 이 같은 수퍼파워 조건을 갖춰가고 있는가?

중국이 13억 인구의 풍부한 노동력과 광활한 시장을 바탕으로 기술·지식·자금 등 생산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상하이 푸둥(浦東)의 금융가가 중국의 부상을 대변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지난 8월 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의 IT 제품 전문매장인 로얏. 델(Dell) 노트북컴퓨터를 가슴에 안고 나오는 웡치우멍(28)은 상기된 표정이다. 집에서 컴퓨터가 오기를 기다리는 아들 생각에서다. 그에게 “어느 나라에서 만든 컴퓨터냐”고 묻자 “당연히 말레이시아 페낭”이라고 답한다. 델 컴퓨터의 60% 이상이 페낭에서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 뒷면 라벨을 살펴본 그는 깜짝 놀란다. ‘Made in China’라는 원산지 표시를 발견한 것이다. “페낭이 아니라고?” 실망감이 얼굴에 역력하다.

급히 페낭으로 길을 잡았다. 쿠알라룸푸르 북쪽으로 4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다.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IT 산업단지답게 삼성·인텔 등의 광고판이 보였다. 델 컴퓨터 조립 공장을 찾는다는 질문에 시정부 관계자는 “이미 다른 곳으로 대부분 가고 남은 건 20%도 안 된다”고 말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페낭은 델 컴퓨터의 최대 생산지였는데 도대체 어디로 거점이 옮겨진 것일까.

답은 중국에 있었다. 상하이 시 중심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쑹장(松江) 개발구. 이곳에 자리한 컴퓨터업체 광다(廣達)에 들어가니 하적장에 델 컴퓨터가 가득하다. “오늘 오후 수출 물량입니다.” 배송 담당 리즈량(李志良)의 설명이다. 웡치우멍이 쿠알라룸푸르에서 산 컴퓨터도 상하이에서 조립된 것이다. 현재 상하이를 중심으로 쿤산·쑤저우·항저우 일대에서 생산되는 컴퓨터는 전 세계 생산량의 80%에 달한다. 우리가 쓰는 컴퓨터의 십중팔구가 ‘Made in Shanghai’인 셈이다.

델 컴퓨터의 물류 흐름은 진화하는 ‘세계공장 중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이란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신발·복장·완구 등 단순 임가공 제품에서 이젠 첨단산업으로 확대됐다. 휴대전화·컴퓨터 등 IT 제품에서 자동차·선박에 이르기까지 첨단기술제품 생산단지가 중국으로 빨려들고 있다. 중국은 현재 컬러TV·자동차 등 210개 내구소비재 품목에서 세계 1위의 생산국이다.

‘제조업의 꽃’이라는 자동차 산업을 보자. 지난 100년 동안 미국은 부동의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었다. 그러나 올해 그 신화가 깨졌다. 돌풍의 주역은 중국이다. 올 상반기 중국의 자동차 판매 대수는 610만 대로 480만 대의 미국을 제쳤다. 세계 자동차업체들이 중국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세계 14개 주요 자동차메이커들이 중국에서 생산시설을 가동 중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 수출은 올해 상반기 독일을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부상하는 제조업 왕국인 중국의 면모다.

제품(物)뿐만이 아니다. 지혜(智)도 중국으로 빨려 들고 있다. 지난 7월 초 베이징에서는 ‘글로벌싱크탱크서밋(全球智庫峰會)’이 열렸다. 쩡페이옌(曾培炎) 전 국무위원이 이끄는 중국국제교류센터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전망’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엔 900여 명의 두뇌가 모였다. 여기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로마노 프로디 전 EC 집행위원장,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 등 400여 명의 외국 명사들이 포함됐다. 세미나에 참가한 김태준 금융연구원 원장은 “전 세계 지식인의 아이디어를 구하고, 또 그들을 상대로 중국경제의 위상을 떨치려는 매머드급 세미나였다”며 “그 많은 세계적 인사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다는 게 바로 중국의 힘”이라고 말했다. 이제 세계의 지식인들은 ‘중국이 부르면 달려가는 그런 시대’를 맞은 셈이다.

돈(貨)에 관한 한 이제 중국은 넘쳐날 정도로 풍족해졌다. 2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이 그 성적표다. 사실 중국경제의 성장 자체가 돈을 빨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넘치는 돈은 이제 해외로 나가는 단계다. 석유·철광석 등 원자재 관련 기업 투자, 해외 금융망 확대, 선진기술 도입을 위한 기업인수합병(M&A) 등에 중국의 돈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110%가 증가한 약 559억 달러가 해외에 투자됐다. ‘제품(物)·지혜(智)·자금(貨)’이 블랙홀 차이나로 빨려 들었다가 세계로 재생산되며 중국의 부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빠른 부상은 “중국이 세계 1위가 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는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쿠알라룸푸르·상하이=한우덕 기자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 사진=최승식 기자



존경받는 수퍼파워 되기엔 아직 …
‘자유·인권’ 후진성 여전

“생활은 없고 사업만 있다.” 광둥성 광저우시 샤오베이루(小北路)의 ‘아프리카 타운’에 사는 콩고인 미라 조지(35)의 ‘차이나 드림’ 이야기다. 모든 일상이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다. 지난달 30일 그가 경영하는 전자제품 가게에서 만난 조지의 표정은 밝았다. 꿈이 절반쯤 이뤄졌단다. 그의 월 순수입은 2만 위안(약 360만원) 정도. 휴대전화와 MP3 등 전자제품을 싸게 사 보따리상을 통해 아프리카로 보내는 게 그의 일이다. 그는 “법만 지키면 중국은 전 세계에서 아프리카인을 가장 평등하게 대우해 주는 곳”이라며 “3년 후면 저축한 돈으로 고향에서 최소한 2층짜리 건물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현재 광저우시에 등록된 아프리카인은 약 2만 명. 단기 및 불법체류자까지 합치면 20만 명에 달한다. 2005년 시작된 아프리카인들의 중국행 러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중국 경제의 위용은 놀랍다. 올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국내총생산 기준)에 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을 보는 세계 각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특히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거나 영토 및 자원을 놓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국가들은 중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갈등 구조는 복잡하다. 일본은 중국과 동중국해 가스전을 놓고 수년 동안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인도는 스리랑카를 지원하는 중국을 우려의 눈으로 본다.

이들 국가에 중국의 군비증강은 적지 않은 걱정이다. 중국 정부가 올 초 발표한 ‘2008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4178억 위안을 군사분야에 쏟아부었다. ‘중국 위협론’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중국이 자유·인권·민주 등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티베트와 신장 등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서 발생하는 소요 역시 중국을 나쁘게 인식시키고 있다. 기회의 땅이면서도 위협의 대상이고, 또 화려한 성장을 이뤄냈으면서도 주변의 존경까지 이끌어내는 데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중국, 이게 바로 21세기 수퍼파워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딜레마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26명 취재진 5개월 준비
중국 15개 도시 현지 탐방

신중국 60년의 발자취를 총체적으로 살피는 일은 지난한 작업이다. 한두 달의 준비로는 어림없는 대사다. 본사는 현대중국학회 등 사내·외 중국 전문가 20명과 사진기자 6명 등 총 26명으로 이뤄진 매머드급 연합 취재단을 구성했다. 게재 예정일인 9월 14일로부터 5개월을 역산해 4월 중순, 준비에 들어갔다.

취재진은 사외에 별도로 마련한 특별기획팀 사무국에서 수시로 만나 난상토론을 벌였다. 난마처럼 얽혔던 신중국 60년의 가닥이 토론과 분석을 거치면서 18가지 주제로 가지런히 정리됐다. 이 기초 작업에만 3개월이 걸렸다.

취재진은 곧바로 자료 확보와 현지 취재에 돌입했다. 취재진 전원은 중국 내륙 15개 도시를 포함해 홍콩·타이베이, 그리고 미국 워싱턴까지 샅샅이 훑었다. 사외 전문가와 중국전문 기자들은 탄탄한 인맥을 동원해 주요 인물들을 현장에서 만나 살아 숨쉬는 얘기를 채록할 수 있었다.



'신중국 60년' 특별기획 참여 전문가 및 특별취재반 명단

*전문가 그룹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
김태호 한림대 교수
문흥호 한양대 교수
안치영 인천대 교수
양평섭 KIEP 베이징사무소장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장영석 성공회대 교수
정영록 서울대 교수
조영남 서울대 교수
표민찬 서울시립대 교수

*중국연구소

유상철 소장
유광종 부소장
한우덕 차장
신경진 연구원

*국제부문

진세근 부장
정용환 기자

*영상부문

김형수 부장
김경빈 차장
김상선 기자
최승식 기자
박종근 기자
김태성 기자

*특파원

최형규 홍콩특파원
장세정 베이징특파원



'신중국 60년' 특별기획 시리즈 순서
1. 슈퍼파워로의 성장과 위협
2. 돌다리도 두드리고 걷는다
3. 공자는 귀신을 말하지 않는다
4. 인재발굴 시스템이 살아있다.
5. 공산당 일당제는 지속될 것인가
6. 인치에서 법치로의 실험
7. 베이징 하늘에도 신은 존재하는가
8. 격차사회는 해소될 것인가
9. 대동사회를 위한 디자인
10. 중국이 펼친 세계전략 '체스판'
11. 소프트 앤드 하드 파워
12. 제3차 국공합작과 중국의 통일
13. 한반도의 봄과 중국의 계산
14.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을 넘어
15. 비즈니스의 판을 바꿔라
16. SOFT산업에서 출구를 찾아라
17. 아시아 클러스터 경쟁에서 이겨라
18. 흡수될 것인가 주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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