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다른 나라에 끌려다니는 머슴 아닌 주인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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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렴 환자의 열을 급히 내린 상태다. 해열제 약효가 떨어지면 고열이 재발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한 것으로 유명해진 책 『화폐전쟁』의 저자인 쑹훙빙(宋鴻兵·41·사진) 중국 환추(環球)재경연구원장은 최근의 세계 경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세계 경제가 ‘W’자형 회복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구조적으로 균형이 무너진 세계 경제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위기는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쑹 원장과의 단독 인터뷰는 글로벌 금융위기 1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말 베이징 그의 연구실에서 90분가량 진행됐다.

-세계 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2차 침체 또는 2차 충격이 올 수 있다. 5월 한국에서 만난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세계 경제를 다소 낙관했으나 최근엔 나와 비슷하게 다소 비관적으로 돌아섰다. 세계 경제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닐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의 관점에 동의한다.”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가.

“미국이 막대한 빚으로 과도하게 소비를 많이 한 것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은 과도하게 생산해 수출했다. 이런 구조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면서 구조적 문제가 생겼다. 14년간 미국에서 살면서 보니 미국인들은 저축하지 않고 놀고 먹는 것을 중시하더라. 이런 습관도 금융위기와 연관돼 있다고 본다.”

-주요 20개국(G20)을 비롯해 각국이 적극 대책을 폈고 성과도 있지 않나.

“각국 정부가 필사적으로 시장을 살렸지만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경제가 금방 ‘V’자형 회복을 할 것으로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2006년에 위기를 예측한 비결은.

“『화폐전쟁1』을 탈고했을 때가 2006년 여름이었다. 그때만 해도 글로벌 주식과 부동산 시장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책을 썼다. 2007년 2월에 1차 대지진, 그해 8월에 2차 대지진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

-올 4~10월에 2차 위기가 올 것으로 예측했었는데.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통계시스템을 돌려보니 올 4월 미국에서 심각한 자금 부족 상황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그래서 올 2~3분기에 금융시장이 요동칠 것으로 봤다. 그런데 3월 19일 미 연방준비위원회(Fed)가 장기국채를 매입하면서 상황을 바꿔놨다. 이는 조폐창에서 돈을 마구 찍어내 문제를 봉합한 것이다. 극단적 수단까지 동원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위기 발생 시점을 뒤로 약간 늦췄을 뿐이다.”

-중국·일본은 미국 채권을 꾸준히 사고 있다.

“개인적으로 미국 채권 매입에 반대한다. 미국 중앙은행이 무한정 발행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중국이 최대 채권국이라도 미국을 통제할 수 없다. 미국 채권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미국을 구하느냐가 더 큰 문제다. 유럽 금융권의 부실채권과 신용문제가 심각한 것도 걱정이다.”

-중국 경제는 올해 8% 성장이 가능한가. 출구전략을 단행할 타이밍은.

“중국 경제는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2차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면 중국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W’자 경기회복이 이뤄진다고 보면 아직 출구전략을 쓸 시점은 아니다.”

-『화폐전쟁1』에서 “담을 높이 쌓고, 군량미를 비축하고, 천천히 패권을 추구하라”고 중국 정부에 조언했는데.

“담을 놓게 쌓으란 말은 개방과 글로벌화를 반대하자는 것은 아니다. 전염병이나 바이러스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방화벽을 튼튼하게 쌓자는 의미다. 금융 분야는 개방할수록 방화벽이 더 필요하다. 군량미 비축은 경제·금융·기술 분야의 실력을 더 쌓자는 뜻이다. 지금은 미국과 패권을 겨룰 시점이 아니므로 머리를 숙이고 묵묵히 실력을 키우라는 주문이다. 물이 흐르면 도랑이 생기듯 자연스럽게 실력이 쌓일 때를 기다려야 한다. 주원장(朱元璋)이 원나라 말기에 이런 전략으로 결국 명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중국이 조만간 패권국 될 까.

“삼성·현대도 중요한 결정은 오너가 책임지고 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다른 사람을 따라가느냐, 이끌고 가느냐다. 따라다니면 영원히 머슴살이를 해야 한다. 이끌고 나가야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 중국은 다른 나라에 끌려다니는 머슴이 아니라 주도하는 주인이 돼야 한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세계의 지도자 국가다. 30년 후가 될지 8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중국과 미국은 어느 영웅이 더 강한지 실력을 겨루는 결전의 날이 올 것이다.”

-한국 경제 회복 기조 는.

“주식과 부동산 시장 회복 추세가 괜찮다. 문제는 중국 경제가 계속 좋아지지 않으면 주변국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의 생산능력은 60억 지구촌을 대상으로 하지만 한국 내수시장이 너무 작다는 것은 숙제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 쑹훙빙과 『화폐전쟁』

쑹훙빙 원장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출신의 국제금융 전문가다. 선양(瀋陽) 둥베이(東北)대에서 자동제어학을 전공한 그는 199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갔다. 통신·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14년간 미국을 다각도로 관찰했다. 특히 미국의 양대 주택담보대출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5년간 일했다. 당시 그가 맡은 일은 부동산 담보대출 자동 심사 시스템 설계와 파생금융상품의 리스크·세무 분석 등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꿰뚫고 있는 중국인으로 꼽힌다.

특히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대외적으로 터지기 이전인 2006년 이미 금융위기 가능성을 예견하고 이듬해 『화폐전쟁1』을 간행했다. 로스차일드를 위시해 화폐 발행권을 무기 삼아 전 세계를 쥐고 흔드는 서구 금융자본의 음모를 실감나게 그려 냈다. 2007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3개월 전이었다. 후속작 『화폐전쟁 2』는 지난달 나왔다. 그는 2007년 말 귀국해 훙위안(宏源)증권에서 국제금융 수석 분석사로 일하고 있다. 올 초에는 독립적인 국제금융연구기구인 환추(글로벌)재경연구원을 설립해 원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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