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20대가 지갑을 열었다, 디지털 비틀스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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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국에 비틀스를 기다리는 팬들이 이토록 많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디지털로 리마스터링된 비틀스 앨범이 전세계 동시 발매된 9일, 개장 전부터 200여 명이 운집한 서울 교보문고 핫 트랙스를 비롯한 전국의 대형 음반매장들이 비틀스의 팬들로 북적댔다. 9일 하루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판매된 비틀스 앨범만 1만 여장. 이미 예약판매로 팔려나간 5만 장을 합치면 이미 첫 수입분량인 7만 장이 거의 동난 상황이다. 1년에 10만 장을 넘기는 앨범이 열 개도 안 되는 우리 음반시장에서 ‘팝의 전설’ 비틀스가 또 하나의 전설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번 음반은 영국 런던에 있는 EMI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엔지니어팀이 4년간 공들여 매만졌다. 음반을 들은 젊은이들은 “비틀스의 음악이 이렇게 엣지(edge)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오리지널 레코딩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이 시대의 청취감각에 맞는 세련된 음악으로 변신했다”고 평했다.

그 때문인지, 이번 리마스터링 앨범을 구입하는 이들 중에는 10~20대가 꽤 많다. 음반을 수입한 워너뮤직코리아에서도 “9일 핫 트랙스를 찾은 사람의 절반 이상이 20대로, 젊은 층들이 예상 밖으로 비틀스를 좋아해 놀랐다”고 전했다.

사실 대중음악이란 동시대를 함께 경험해온 ‘또래들만의 공유물’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비틀스의 뒤늦은 열풍은 ‘음악의 생명력’을 곰곰 생각하게 한다. 음악평론가 송기철씨는 “지금 전세계에 불고 있는 비틀스의 열기는 그들의 음악이 당대에 그치지 않고 세대를 아우르는 생명력을 지녔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미 수십 년 전 음악이지만, 그들이 가졌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예술적 완성도가 기꺼이 팬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음반을 안 산다’는 한탄이 만연한 한국 가요계에도, 음반을 사는 행위로 기꺼이 경의를 표하고 싶은 ‘전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비틀스가 보여주고 있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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