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왜 교사가 학교를 떠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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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 한해 3만여명의 교사가 교단을 떠날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초.중등교사 25만6천여명의 12%에 가까운 숫자다.

이중엔 교원정년단축에 따른 불가피한 퇴직자도 있다.

불안한 공무원연금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앞당겨 퇴직하는 교사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해야 할 상황은 명퇴 교사의 산술적 급증에만 있지 않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의 교직헌신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것은 환멸과 좌절밖에 없다는 교사들의 집단체념이 '명퇴 러시' 를 몰고온 근본 요인이 아닌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7일까지 접수될 명퇴 신청자는 62세 미만 교사가 1만2천명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정년단축에 따른 퇴직자 9천명, 이미 지난 2월에 퇴직한 9천3백여명을 합치면 3만여명이 된다.

이중 62세 미만의 순수 명퇴지원자의 80%가 초등학교 교사라는 점에 깊이 유의해야 한다.

서울의 경우 3천1백여 신청자 중 2천여명이 초등교사다.

왜 유독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를 집단적으로 떠나는가.

첫째 이유가 근무여건이 아직도 열악하다는 점에 있다.

잡무와 격무에서 조금도 해방되지 않은 채 전근대적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당 수업시간이 32시간 남짓이다.

하루 5시간 이상의 수업을 맡고 교사 평균 73건의 잡무를 처리해야 한다.

중등학교의 경우 주당 평균 24시간 수업에 44.9건의 잡무를 처리하니 상대적으로도 초등교사의 짐은 너무 무겁다.

이런 격무와 잡무에 시달리며 교사의 긍지와 헌신을 각오한다 해도 돌아오는 것은 촌지나 체벌문제에 따른 사회의 냉대뿐이다.

심지어 파렴치범으로 몰리기도 한다.

교사의 자존심과 긍지를 세울 아무런 장치가 없다.

50대 교사들이 영어와 컴퓨터를 동시에 가르쳐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여기에 학부모들의 고령교사 기피현상까지 있다.

차라리 이럴 바엔 차제에 학교를 떠나자는 게 일반적 정서로 자리잡는 것이다.

특히 40, 50대 중견교사들이 집단적으로 학교를 떠날 경우 빈 자리를 메울 대안이 없다.

교육대학 졸업자의 대부분이 졸업과 함께 취업이 되니 대기자가 없다.

중등교사의 학과전담교사 대체로 메운다지만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는 교육이 제대로 될지도 걱정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것은 정부의 교육개혁이 교사들을 짧은 기간에 너무 흔들어 놓은 탓도 있다.

교사가 개혁의 주체인 데도 개혁의 대상으로 몰았으니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과도기 혼란으로 치부하지 말고 초등교사의 짐을 덜어주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교사로서 헌신할 수 있는 자긍심을 제도적으로 심어줘야 한다.

잘못된 초등교원 수급체제도 고쳐야 한다.

일반대학의 교육대 편입을 장려하고 강화된 경쟁교육으로 초등교원의 질적 향상도 도모해야 한다.

초등교육의 현장을 교사 스스로 기피하는 3D업종으로 방치한 채 교육개혁을 외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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