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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선두주자 영국이 독일에 뒤처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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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독일이 뒤늦게 산업혁명에 뛰어든 1904년 당시 독일 기업 ‘아에게(AEG)’의 공장 내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은 치열한 산업 경쟁을 벌였다. 독일은 18세기에 제1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에 비해 1세기나 늦게 뛰어들었지만 뜻밖에도 승자는 독일이었다. 독일의 전기 산업은 186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아에게’와 ‘지멘스’ 등의 회사들은 곧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했다. 생산량은 급속도로 증가했고, 그 결과 20세기 초에 철강생산 부문에서 영국을 앞질렀고 세계적으로 화학공업 발전을 선도했다. 제2차 산업혁명이었다.

영국이 뒤처진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최초로 산업화된 국가’라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이미 낡은 공장과 설비에 자본을 투자하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분야나 새로운 방법의 개발을 꺼렸다. 예컨대 영국은 최초로 산업화된 국가였기에 산업 중심지도 19세기 초의 생산 규모에 맞게 조성돼 있었다. 그러나 바야흐로 철강공업은 대규모 부지와 편리한 교통을 필요로 했다. 영국은 공업도시가 비좁아 독일처럼 대형 제철소를 지을 수 없었다. 그 결과, 1900년께 영국 최대의 제철소는 독일의 평균 규모 제철소보다도 작았다.

다음으로 산업 선진국으로서 ‘성공의 기억’이 영국의 자세를 경직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온 만큼 영국인은 만족했다. 하지만 증기기관과 제니 방적기 같은 제1차 산업혁명의 위업이 다분히 우연적인 결과물인 데 비해, 제2차 산업혁명은 과학과 기술의 긴밀한 결합의 산물이었다. 교육 받은 노동자와 창조적 과학자 없이는 불가능했다. 독일에는 이러한 인적 자원이 있었지만 영국엔 없었다. 독일은 1825년부터 본격적 의무교육을 실시했지만, 영국은 1876년에야 초등 교육을 의무화 했다. 독일은 국가 주도로 과학·기술연구소와 훈련원을 운영했지만,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이런 시설이 전무했다.

요컨대 영국의 패배는 승자의 자만 때문이었다. 교육의 목적이 창의성 배양이 아니라 ‘신사’를 만드는 데 있다고 보았기에, 과학·기술 분야로 나아가 창조적 재능을 발휘해야 할 인재들이 정계·관계로 진출했다. 과거의 경험에만 의지하려는 풍조로 인해 창조적 연구자와 모험적 사업가의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되기 일쑤인 냉엄한 국제 현실이다. 우리 또한 지난 시절의 성공 기억에 안주해 변화를 거부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