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잊고 있는 경제체질 개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최근 경기회복 조짐을 타고 시중의 경제흐름에 실로 우려할 만한 양극화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뭉칫돈이 은행을 떠나 주식시장과 일부 부동산에 몰리면서 이상과열 조짐을 빚는가 하면, 2백만 실업자시대를 비웃듯 벤츠승용차 등을 내건 '고 (高) 소비' 경품잔치도 다투어 벌어진다.

증시의 종합주가지수도, 거리에 나다니는 자동차도 이미 환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기업의 수지나 수익성은 여전히 바닥권이고, 전체수출의 부진 속에 사치성 소비수입은 급증하고 있다.

금융장세를 업은 흥청거림 속에 구조조정은 뒷전이고, 경기회복을 이유로 임금인상 등 근로자들의 참았던 욕구도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정말 이럴 때며, 이래도 되는 것일까. 지표상으로 경기의 회복세는 완연하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워낙 나빴던데 따른 반사적 상승요인이 대부분이며 본격적인 경기의 '봄' 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이를 믿고 체질개선을 게을리할 경우 우리 경제는 장기불황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우려가 다분하다.

국내외 경제상황은 지극히 유동적이며 낙관을 불허한다.

금리가 크게 내리고 부동자금이 뭉칫돈으로 몰려다니지만 돈이 물꼬를 따라 제대로 흐르지 않고 금융기관 등 일부에서만 넘쳐나고 있다.

5대그룹과 금융기관 등 상류의 저수지에서는 홍수가 나고 하류는 극심한 돈가뭄에 시달리는 격이다.

돈이 제대로 흐르려면 신용경색이 풀려야 하고 신용경색을 뚫으려면 구조조정으로 기업의 수익성을 개선해 물꼬를 터야 한다.

부동산투기와 고소비조짐은 이들 넘쳐나는 돈 때문이다.

증시의 활황 또한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상장기업의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주가상승 또한 투기성 거품임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수출의 본격적인 회복세 역시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과 직결된다.

정책 및 금융지원과 환율조정으로 수출을 늘리는 데는 스스로 한계가 있다.

재벌중심의 수출산업체제는 이미 해체단계에 들어섰는데도 그 후속 대안과 국가적 전략은 부재 (不在) 상태다.

지식산업과 벤처산업은 잠재력은 크지만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성장잠재력을 급격히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견인차를 찾는 '재벌 이후' 의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

경제의 회복에 소비진작은 불가결하다.

문제는 건전소비를 넘어선 과시적.충동적 소비에 있다.

지표상의 호전을 믿고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피하려 들고, 근로자들이 '내몫 찾기' 의 목소리를 다시 높인다면 노사갈등은 격화되고 외국투자가들은 등을 돌릴 것이 뻔하다.

설사 회복의 속도를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각 경제주체들의 체질개선부터 다그쳐야 한다.

'정치권의 개입 없이 재벌의 구조조정은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 이라는 존 도즈워스 IMF한국사무소대표의 최근 발언은 바깥의 경고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