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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 준비된 국민, 준비 안된 정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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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3.30 재.보선은 3개 지역 평균투표율이 36.2%에 그친 관심없는 선거였다.

시흥의 경우는 당선자 득표율이 총 유권자의 16.7%밖에 안됐다.

이러니 당선자가 과연 대표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신통한 것은 이런 낮은 투표율 및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선거결과는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전체 민심의 흐름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낮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선거결과에는 '대표성' 이 있다는 말이다.

이는 그만큼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이 동질화.평균화돼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번 재.보선을 통해 유권자들은 분명히 메시지를 전했다.

그 첫째는 '이제 해묵은 직업정치인은 더 이상 싫다' 는 메시지다.

시흥 (始興) 의 한나라당 장경우 (張慶宇) 후보와 안양 (安養) 의 이준형 (李俊炯) 후보가 낙선한 것은 유권자들의 이런 심리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오랜 정치적 관록과 경험이 오히려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다음의 메시지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라' 는 것이었다.

이는 앞의 메시지와 동전의 앞뒤 관계에 있는 것이다.

시흥의 김의재 (金義在) 후보와 안양의 신중대 (愼重大) 후보는 이런 점에서 경쟁자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당선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데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국민의 정치권에 대한 이런 메시지를 한 줄로 정리한다면 바로 '전문성을 갖춘 참신한 인물을 등장시켜라' 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 96년 4월 11일 제15대 총선에서도 뚜렷이 부각된 바 있다.

지난 제15대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신인과 전문직 종사자의 대거 등장이었다.

지역구의 경우 초선의원 비율이 40%가 되었다.

또 14대에 비해 공직경력자가 8%에서 13.5%, 법조인 역시 8%에서 10.9%로 느는 등 전문직 종사자의 정계진출 현상이 뚜렷했다.

새 인물에 대한 유권자의 갈구는 특히 서울에서 강해 이른바 중진이라는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신인들에게 혼쭐이 난 바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

이번 선거결과는 정치권이 민심의 변화에 얼마나 무관심했나 하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결과론이라 할는지 모르나 만약 국민회의가 충청표도 지킬 수 있는 좀 더 새롭고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내세웠더라면 연합공천의 이점 때문에 안양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지적은 한나라당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3개 지역 전체 득표수에서는 12만4천8백31표 대 12만6백10표로 공동여당에 오히려 앞섰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여론이 결코 약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역시 전문성있고 참신한 후보를 내세웠더라면 선거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도, 야도 국민의 욕구보다는 당내 사정을 우선시한 안이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이번과 같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한마디로 자업자득 (自業自得) 인 것이다.

투표함의 뚜껑이 열린 뒤에야 여야가 다같이 당황함과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돼 있었으나 정당들은 과연 시대변화를 흡수할 준비가 전혀 안돼 있었다는 증거다.

공동여당은 안양의 결과에서 연합공천이 결코 만병통치의 수단이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야당은 구로와 시흥의 결과에서 안이하고 타성적인 공천으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과감한 물갈이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를 위해서는 '헤쳐 모여' 의 결단마저도 필요할 것이다.

현재의 정당구조로 국민의 욕구에 부응할 수 없다는 것은 짧게는 눈앞에 다가온 또다른 보선의 결과에서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국민의 요구가 내년 총선에서는 원하든 원치 않든 지각변동과 같은 충격과 변화를 정치권에 안겨줄 것이다.

'전문성을 갖춘 참신한 인물' 이란 국민의 요구는 따지고 보자면 최소한의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지당한 요구가 아닌가.

그러나 국민들은 우리 정당들이 하루 이틀내에 이념적 정체성 (正體性) 은 물론 정책적 차별성조차 갖추지 못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차선책으로 능력 있고 때묻지 않은 인물을 바라는 것이다.

국민은 정치권의 머리꼭지 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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