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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헌법재판관 전원 국회에서 뽑는 게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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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법부가 국회에 휘둘려 삼권분립 훼손”

자문위는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전원을 국회(하원)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선출 과정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지금처럼 헌법재판관 선출에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개입하는 것은 권력 분립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면서 헌법재판관 전원도 국회(하원)에서 뽑도록 했다. 헌법재판관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한 것이다. 자문위는 국회에서 대법관·헌법재판관을 선출하더라도 의결정족수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기 때문에 다수당이 단독으로 임명하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 여야가 ‘나눠먹기 식’으로 대법관·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게 돼 사법부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연세대 김선혜(법학) 교수는 “국회가 대법관을 전원 선출할 경우 다수당에 의해 법원이 영향을 받는 ‘사법부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며 “그럴 경우 법원이 담당하는 당선무효 소송과 같은 선거재판에서 중립성이 보장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재적 3분의 2의 선출 규정에 대해서도 “대법관이 여야 각 정당 간 정략과 타협의 산물로 임명되는 식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인섭 명예 대표변호사도 “자문위의 안대로라면 대법관은 정치이념에 따라 뽑히게 되고 결국 사법부가 국회에 휘둘려 삼권분립 정신이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법사위의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은 “야당이 정권에 부담을 주기 위해 무작정 반대하는 일이 잦은 우리 국회 현실에서 의결정족수를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규정한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원정부제 운영 “우린 동거정부 경험 없어 혼란만 커질 것”

자문위는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 이원정부제와 대통령 4년 중임제의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미국식인 대통령 4년 중임제는 현행 5년 단임제 시스템과 대통령 중심제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변화의 충격이 덜하다. 하지만 프랑스·오스트리아·핀란드 등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이원정부제는 의원내각제의 요소에다 대통령제를 가미한 독특한 제도여서 우리에게 아직 낯선 편이다. 자문위가 이원정부제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지도자(대통령)를 직선으로 뽑고 싶어하는 유권자들의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권력의 중심을 의회(총리)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숭실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의회가 뽑은 총리 사이의 역할 분담이 애매하면 파워게임이 일어날 수 있다”며 “특히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까지 부여한 것은 굉장히 강한 권한이어서 총리와 갈등을 빚을 소지가 많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의원내각제 하에서 정치세력 간 연합의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대통령과 총리가 다른 당인 ‘동거정부’가 출현하면 국정 혼란이 극심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프랑스에서 이원정부제가 정착된 것은 오랜 의원내각제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연세대 하연섭(행정학) 교수는 “프랑스는 정당 정치가 확고히 뿌리내려 있고, 우리보다 더 엘리트 위주의 관료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원정부제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그와 같은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이원정부제를 도입한다면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협력과 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하원제 도입 “지금도 효율성 낮은 국회, 더 키워야 하나”

개헌보고서는 양원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의회 내의 상호 견제를 통해 의안 심의 과정의 신중성을 높이고, 상원을 통해 입법부와 행정부의 극단적 대립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임기는 하원이 4년, 상원이 6년이다. 하원은 임기 4년마다 총선거를 치르지만, 상원은 2년마다 부분 선거를 실시해 3분의 1씩 교체하는 방식이다. 법안은 원칙적으로 양원 모두를 통과해야만 발효된다.

하지만 서강대 이현우(정치학) 교수는 “의원들이야 국회의 몸집이 커지면 좋겠지만, 지금도 국회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 받는 마당에 국회의 덩치를 키우는 것이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상원과 하원을 장악한 다수당이 각각 달라 서로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원만한 타협이 가능할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양원제는 전통적으로 연방제 국가나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에 적합한 제도여서 조선시대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춰온 우리 실정엔 부적합하다고 보는 학자들도 적잖다. 경남대 심지연(정치학) 교수는 “통일 이후의 상황이라면 상원은 남북한이 동수로 구성하고 하원은 인구비례로 구성하는 양원제가 바람직하겠지만 현 시점에 양원제를 실시하는 것은 정치의 비용만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선·총선 동시에 “대통령과 18대 국회 임기 조절 가능할까”

자문위는 대통령 4년 중임제하에서 대선과 총선의 선거 주기를 일치시켜 동시에 치를 것을 제안했다. 자문위는 “의회와 행정부의 대립, 분점 정부(여소야대 국회)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통령 힘 실어 주기’가 오히려 개헌의 취지인 대통령 권력 분산에 역행한다는 반박도 나온다.

미국 플로리다대 박원호(정치학) 교수는 “미국처럼 4년 중임제로 갈 경우 총선과 대선이 2년마다 엇갈리도록 만들어 대통령 중간평가 의미의 총선을 치르도록 하는 게 상호 견제와 권력 분립 정신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선·총선 주기를 맞추려면 ▶2013년 2월에 끝나는 현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2012년 5월)하거나 ▶2012년 5월에 만료되는 18대 국회의원의 임기를 9개월 더 늘려야 하는데 그 어느 쪽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각에선 2012년 6월부터 2013년 2월까지 9개월짜리 국회를 끼워 넣는 방법도 거론하고 있으나 현실성은 떨어진다. 자문위는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자문위 관계자는 “임기 조정 문제는 자문위에서 다루기에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며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국회 개헌특위에서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거 늘린 기본권 “헌법, 하위 법률 지배 … 마구 신설하면 위험”

자문위는 생명권, 안전에 대한 권리, 사상의 자유, 정보 기본권, 소비자의 권리, 정치적 망명권, 출산·양육권 등 다양한 국민 기본권을 신설했다. 시대 변화에 부응해 기존 헌법 체계에선 빠져 있던 새로운 권리 개념을 대거 도입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취지는 좋으나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숭실대 강경근(법학) 교수는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은 다른 하위 법률에 우선하는 가치가 되기 때문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하는 식으로 마구 신설하는 건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가령 ‘사상의 자유’ 기본권이 만들어진다면 이를 근거로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공산주의 사상까지 용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 ‘언론·출판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제한 규정(헌법 제21조 4항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을 삭제키로 한 것이나, ‘집회의 자유’를 별도로 신설하고 집회 제한 규정을 두지 않기로 한 것 등은 보수 진영이 반발할 소지가 있다. 반대로 양심상 병역거부권을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것이나,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지금처럼 계속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결정 등은 진보 진영의 불만을 살 것으로 보인다.

김정하·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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