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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이사 정당 추천제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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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그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언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워터게이트 취재의 영웅인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명답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어느 기자가 쓴 기사가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이라면 그것은 사실로 봐야 한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미국의 한 언론인위원회가 운영하는 PEJ(The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는 우드워드의 정의(定義)를 더 구체화했다. PEJ는 기사의 수준을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이 될 만한 보도지수(The Reporting Index)로 세 가지 요소를 제시했다. 좋은 기사란 넷 또는 그 이상의 투명한 취재원을 통해 정보를 얻은 것이라야 하며, 기사에 관점의 다원성이 녹아 있어야 하고, 넷 또는 그 이상의 이해 당사자의 견해가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기자는 관점과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취재원을 통해 정보를 얻어 사실을 공정하게 재구성해야 한다.

몇몇 국내 언론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언론은 미국 언론에 비해 관점이나 이해관계가 다양한 취재원을 활용하지도 않으며, 취재원을 투명하게 밝히지도 않는다. 우리 언론은 우드워드의 표현에 빗대자면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용 가능한 최선의 버전’으로 각색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미 고질로 굳어진 정파성 때문이다. 방송이건 신문이건 정파성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해 사실을 왜곡하고 심지어는 날조한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그런 예라면 ‘PD수첩’을 비판하는 신문의 기사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하지만 저널리즘도 막장이다.

정파성을 공정성으로 바꿔 놓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 언론의 과제다. 이런 과제는 우선 공영방송이 시급히 풀어가야 한다. 공영방송이야말로 공영답게 공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 구성한 KBS와 MBC 이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방송사 이사의 구성방법을 알고 나면 기대감은 곧 수포(水泡)처럼 사라지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공영방송 이사는 모두 정당이 추천한다. 각 정당은 평소에 정파성이 뚜렷해서 자기 정당의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대변할 이를 이사로 추천한다. 다수 이사를 추천하는 여당은 아예 청와대에서 명단을 짠다는 게 속설이 된 지 오래다. 이런 과정을 거쳐 뽑힌 이사들은 중요한 의안을 표결로 처리한다. 논리가 아니라 수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이런 제도로 방송의 공정성을 구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만이자 허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각 정당이 공영방송의 공정성 정립을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고, 이를테면 학회나 변호사회·문인단체·사회단체 등 유관 기관에 공정한 분을 방송사 이사로 천거해 달라고 해서 그 가운데 몇몇 인사를 엄선해 추천한다면 정당추천제의 한계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추천제를 운용한 정당은 없다.

공영방송 이사의 정당 추천제는 방송의 공정성 구현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정파성을 확대 재생산하는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 언론학계만 하더라도 그렇다. 언론학계에는 현재 언론 공정성 구현을 내걸고 활동하는 단체가 여럿 있다. 물론 다 스스로 공정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외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하나같이 특정 정파에 경도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단체들이 자율적으로 조절기능을 발휘해 합당한 절차를 거쳐 이사를 정당에 천거하는 것도 아니다. 각개약진하여 권력 실세에 줄을 대야 이사 자리를 얻는다. 언론의 정파성이 학계의 정파성을 낳고 당연한 결과로 학계의 위상이 참담한 지경으로 떨어진다. 학계 위상이 그렇게 된다는 것은 곧 공정성 구현의 길이 더욱 요원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이 악을 낳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공영방송 이사의 정당추천제는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