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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 누가 시계를 거꾸로 돌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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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공' 의 부활 소문 덕에 시민들의 잠자던 역사의식도 모처럼 깨어나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가.

그렇다면 이 시절에 5공의 저 기지개는 무엇이란 말인가.

소문을 접하며 시민들이 반사적으로 갖게 되는 의문들이다.

정치권은 이런 의문에 당연히 답을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도리어 정치권은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5공의 움직임을 국민회의는 느긋이 방관하고 있고, 자민련은 손을 마주 잡을 기세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쪽은 도리어 한나라당인 것이다.

자민련이 5공 인사들과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야 이해하지 못할 것 없다.

그들은 본래 한 핏줄이 아닌가.

그러나 건전한 상식으로는 얼른 납득하지 못할 게 바로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이 보여주고 있는 정반대의 반응이다.

어느 모로 보나 5공의 부활 움직임을 반대하고 우려해야 할 정당은 국민회의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5공과 핏줄이 통하는 세력을 안고 있는 정당이니까 느긋해야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현실은 그 정반대이니 시민들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고 우리의 민주화가 과연 어디쯤 와 있으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지를 자문 (自問) 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누가 어찌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5공측 스스로 반성하고 자숙하며 근신해야 마땅할 것이다.

5공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정권때 준열한 사법적 심판이 내려졌다.

그들은 정치적 재판이었다고 강변할지 모르나 그때나 이제나 대다수 국민들은 사법부의 판단을 지지하고 있다.

소문의 핵인 장세동 (張世東) 씨는 개인적인 행동을 확대해석하지 말아달라고 하고 있지만 전두환 (全斗煥) 씨의 그림자니 오른팔이니 분신 (分身) 이니 하는 자신의 움직임이 5공의 부활로 비춰지지 않을 줄 알았다면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5공의 부활 움직임이 그들의 욕심 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지금도 '5공의 명예회복은 필연적이고 당연한 일이며 역사적으로나 사법적으로나 재평가될 것' 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런 그들을 정부는 관용과 화합이란 이름 아래 모조리 풀어주었고 지난해 광복절에는 사면.복권의 혜택마저 베풀어 부활의 법적 기반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렇다면 책임은 누가 더 큰 것인가.

5공 인사들의 출마를 정의와 도덕의 이름으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 그들을 막을 길은 없다.

그들은 이제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있는 완전한 자유인이다.

게다가 누구 못지 않은 재력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여당은 현재 동서화합이니, 지역정당의 구조타파니 하는 명분으로 정치적 껴안기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동서화합과 지역정당구조의 타파가 이 시대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껴안기가 정치적 정체성 (正體性) 이 뭔지 모르게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고 시계가 거꾸로 가는지, 바로 가는지도 가늠이 안되게 마구잡이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면 분명 문제일 것이다.

현 정권으로서는 화합을 위해, 무엇보다 정치적 안정을 위해 껴안기 전략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할는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도문제요, 정체성의 유지를 전제로 하고서야 양해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온갖 뿌리의 정치인을 그저 세 (勢) 불리기 차원에서, 혹은 인질 차원에서 묶어둔 듯한 정당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도 실은 3공도, 5공도, 6공도 마다하지 않는 무차별적 껴안기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은 반대여론이 적지 않음에도 북한에 대한 햇볕론을 꿋꿋이 유지해 나가고 있다.

그로 인한 정치적 손실도 있겠지만 정권의 정체성만은 뚜렷해졌다.

그리고 햇볕론이 처음엔 소수의 지지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어느덧 다수의 지지를 받기에 이르렀고 정권의 굳건한 버팀목이 되고 있지 않은가.

정치도 바로 그래야 한다.

본래의 정체성으로 꿋꿋이 밀고 나갈 때 진정으로 세가 불려지고 힘이 생기는 것이지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르는 세력들을 끌어모은다고 힘이 생기는 건 아니다.

공연히 흘러간 과거만 되살려 본의 아니게 시계 바늘이 거꾸로 돌게 할 뿐이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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