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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을 만든 작가, 악의 화신을 그리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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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호 05면

일본에서 데즈카 오사무(1928~89)를 ‘만화의 신(神)’으로 추앙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만화는 단순히 말초적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귀엽고 예쁜 주인공들이 등장해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른들도 고심할 만한 철학적 주제가 깔려 있다. 구조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존재하는 ‘우주소년 아톰’은 인간과 과학의 소통 문제를 상징한다. ‘리본의 기사’ 주인공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 문제로 혼돈을 겪는다. 그의 작품이 남녀노소 고루 인기와 사랑을 받았던 이유다.

만화 ‘뮤 MW’, 원작 데즈카 오사무, 번역 김경은, 펴냄 AK커뮤니케이션즈

그의 78년 작 ‘뮤 MW’는 본격적인 성인물을 표방한 만화다. “기존의 제 색깔을 없애고 사람들이 놀라워할 악한 드라마를 그려 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대로, 이 작품은 기존 데즈카 오사무의 이미지를 훌쩍 뛰어넘는다. 살인·테러·강간·폭력·유괴·납치 같은 사회악은 기본이고 정치적·군사적 음모를 꾸미고 추진하고 배신하는 자들의 비릿한 욕망과 음모가 곳곳에 넘실댄다. 항상 밝은 얼굴의 작가에게 뭔가 억눌린 트라우마가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유능한 은행원이지만 실은 갖은 악행을 천연덕스럽게 저지르는 악의 화신 유키 미치오와 그런 유키를 저지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늘 농락당하기만 하는 고뇌하는 성직자 가라이 유타로. 이들에게는 둘만의 비밀이 있다. 15년 전 생화학무기 MW의 방출 사고로 주민 전원이 몰살당한 섬에서 기적적으로 둘만 살아남았던 것. 당시 미량의 독가스를 흡입했던 유키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MW를 찾아내 전 인류를 죽이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악에 이끌리고있다. 유키에게 강간을 당하고 나서 오히려 그를 사랑하게 되는 스미코나 유키의 악행에 분노하면서도 그와의 동성애에 허물어지고야마는 가라이가 대표적이다. “아니 뭐 이런 막장 만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게 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욕망 앞에서 쉽게 무릎 꿇는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 아닐까.

‘뮤’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 영화는 지난 7월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다마키 히로시와 ‘전차남’의 야마다 다카유키가 주인공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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