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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이슬람 '문명충돌'…인도네시아 암본섬의 비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인도네시아 동부 암본섬이 올초부터 계속되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유혈충돌로 수백명이 피살되고 주민들의 대탈출이 이어지면서 죽음의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창과 칼로 무장하고 화염병 등으로 서로를 공격, 지난 1월 19일 이후 3백명 이상이 숨지고 수만명의 주민들이 인근 지역으로 피신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 9일 3천명의 군인을 투입, 종교분쟁 진화에 나섰으나 다음날 군의 발포로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오히려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추가로 1천명의 군 투입을 결정했으나 주민과의 충돌을 우려, 투입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종교분쟁이 심화되면서 사상자가 늘어나자 마침내 교황도 이 지역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지난 14일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폭력사태를 중단하고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라" 고 명령했다.

그는 암본섬이 종교의 충돌로 조화로운 공존을 뒤집고 잔인한 충돌의 중심지로 변했다고 애석해 했다.

그러나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서로의 사원을 불지르고 닥치는대로 학살을 일삼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대부분의 상점들과 공공기관이 문을 닫고 거리에는 나다니는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특히 기독교도들 사이에는 정부군이 자신들을 '청소' 할 것이란 소문까지 퍼져 치안이 완전히 실종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암본섬 기독교도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뿌리깊은 역사적 갈등에 그 원인이 있다.

암본섬 주민들은 지난 49년 인도네시아 독립 당시 편입을 거부하고 자치투쟁을 벌였으나 정부군의 무력진압으로 무산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암본섬은 이후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자바섬 정부로부터 끊임없는 차별과 탄압을 받아왔다.

수하르토 대통령이 66년 집권하면서 "어떠한 형태의 인종.종교갈등도 허용하지 않겠다" 는 포고령을 내리면서 암본섬의 종교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듯 했다.

암본섬의 종교간 유혈사태는 그러나 앞으로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올 6월 치러질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이슬람색이 강한 정권이 탄생할 것으로 예견되면서 기독교도들의 불안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암본섬 기독교도 사이에는 이슬람 정권은 자신들에 대한 탄압을 다시 시작, 생존마저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널리 퍼져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70년대 이후 암본섬에 자바섬의 이슬람교도들을 대거 이주시킨 것도 자신들을 말살시키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또한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경제위기도 종교간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한 요인이다.

◇ 암본섬 종교분포 = 인도네시아는 현재 인구 약2억1천만명중 90%가 이슬람교도. 그러나 암본섬은 전체 주민 31만1천여명중 기독교도가 절반 이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암본섬에 기독교인이 많은 것은 서구 식민지시대의 산물. 암본섬을 비롯한 몰루카스제도 일대는 향료의 원료인 육두구나무의 열매와 정향나무 등의 원산지다.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등은 19세기 초 인도네시아 전역에 이슬람교가 확산되기 전 이 지역을 식민지로 점령, 향료를 가져가고 기독교를 전파했다.

40년대까지 암본섬 원주민들은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믿었고 자바섬에서 벌어지는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도 관심이 없었다.

암본섬 주민들은 49년 인도네시아가 독립하자 편입을 거부, 자치투쟁을 벌이며 50년엔 몰루카스 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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