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으로 갈까요?"(기사)
"나세르는 어느 쪽으로 갔나?"(사다트)
"왼쪽요."
"그럼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게."
실제 있었던 이야기는 아니다. 당시 서방 언론들이 사다트의 조심스러운 정책전환을 예상하며 지어낸 풍자였다. 그 후 깜빡이는 정책의 전환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곤 했다. 사다트는 집권 초 나세르 추종세력의 견제를 받았다. 이를 의식한 그는 겉으론 나세르 노선을 강조했다. 왼쪽 깜빡이는 '나세르와 같은 길을 갈 테니 안심하라'는 정치전술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다 71년 5월 정적들을 쿠데타 혐의로 체포한 뒤 사다트는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에서 나세르와 반대로 나아갔다. 나세르는 사회주의식 계획경제를 표방했으나 사다트는 대외개방을 추진했다. 또 나세르가 분배를 중시한 데 비해 사다트는 성장을 택했다. 막상 교차로에 접어들자 깜빡이를 무시하고 핸들을 반대로 꺾은 셈이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외채가 늘고 인플레가 심해지는 등 혼란이 커졌다. 식량 부족이 겹쳐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개방과 성장이라는 방향은 잘 잡았으나 운전이 서툴러 일을 그르친 것이다.
이처럼 정책의 전환은 단순히 지도자의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지지세력의 반발을 살 수 있다. 반대파에 국정의 주도권을 빼앗길 염려도 있다. 또 실패하면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다.
이 때문에 권력기반의 흔들림 없이 정책전환을 꾀하는 데는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사다트의 깜빡이도 그런 의미에서 나온 비유일 것이다. 또 전문적인 정책 수행능력도 있어야 한다. 이를 갖추지 못한 정책전환은 위험한 도박이다.
국내에선 지난주 발표된 금리인하를 정책의 전환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지만 일단 부양과 성장 쪽으로 깜빡이를 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워낙 어렵다고 하니 '우리도 경제에 신경 쓰고 있다'는 신호를 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핸들의 방향이 실제 어디로 꺾일지는 더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깜빡이는 깜빡이일 뿐이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