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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2001] 올 영화계의 화두 '리메이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글자 그대로 '다시 만든다' 는 뜻의 '리메이크 (Remake)' 가 또다시 올 영화계의 화두로 등장했다.

최근의 국산 리메이크 영화 1호는 김규리 주연의 '산전수전' . 현재 상영중인 '산전수전' 은 일본영화 '비밀의 화원' 을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복사하다시피 해 구설수에 올랐다.

얼마전 신인배우 모집으로 화제를 모았던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내년 설 개봉예정인 이 영화도 고전소설 '춘향전' 이나 판소리 '춘향가' 를 바탕으로 '다시 만든다' 는 면에서 리메이크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리메이크의 방법론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산전수전' 은 원작의 콘티 (촬영대본) 를 약간 변형시키는 선에서 거의 똑같게 짜맞춘 모사품 (원작의 콘티를 이용해 그대로 찍을 경우 '리프로덕션' 이란 말을 쓴다)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다.

반면 '춘향뎐' 은 그야말로 원작의 큰 골격만 남기고 거기에 새로운 살을 붙여 '제2의 창작' 을 한다.

둘 다 리메이크란 말을 쓰긴 하지만 결과물은 이처럼 다를 수 있다. 이런 편차 때문에 같은 리메이크라 하더라도 '산전수전' 의 경우 작가의 창작열과 의식의 부재 등으로 '비윤리적' 이란 지탄을 받을 여지가 많다.

외국작품 중에서도 리메이크의 양식문제가 최근 도마 위에 올랐다. 그 유명한 앨프리드 히치콕의 '사이코' . '굿 윌 헌팅' 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이 리메이크해 지난해 8월 개봉 (지난 1월말 국내개봉) 한 이 영화는 흑백을 컬러로 바꿨을 뿐 거의 원작을 '베껴 (카피)' 세계영화팬들로부터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고전 '사이코' 를 사수하자" 는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생길 정도였다.

원래 영화에서 리메이크는 합법적 용어이자 감독의 다양한 시각을 담을 수 있는 좋은 방법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식으로 원작과 계약에 의해 리메이크를 했을 때는 그 결과물이 어떻든 법적인 문제는 없다.

단지 이 때는 그 작품의 수준에 따라 작가로서의 윤리성과 의식의 문제만이 입방아에 오를 뿐이다.

그래서 '리메이크라고 밝히느냐 안 밝히느냐' 는 작품의 질과 함께 리메이크영화를 평가하는 좋은 잣대가 된다. 특히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 으로 외국 것을 '슬쩍' 했을 경우 그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인 '표절' 이 된다.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 가 프랑스영화 '마이 뉴 파트너' 를 베꼈다며 논란이 있었을 때도 '리메이크 했음' 을 밝혔다면 덜 시끄러웠을 것이다. 우리식의 대사와 상황논리로 포장을 잘 했지만 '원작' 임을 고집, 구설수의 표적이 됐다.

우리 영화의 리메이크 역사도 꽤 긴 편. 60년대초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맨발의 청춘' 도 일본의 '흙탕속의 순정' 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최근에 불거져 나왔다. 이 작품도 리메이크지만 '몰래' 만들었으니 표절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

리메이크.리프로덕션.표절 외에 자주 쓰이는 용어중에 패러디 (Parody)가 있다. 패러디는 원작의 상황을 일부 끌어와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풍자.짜집기하는 경우를 이른다. 외화 '총알탄 사나이' 가 대표적이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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