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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DJ 노믹스와 시장경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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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1주년을 맞았다.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밝혔듯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이에 근거한 개혁을 나름대로 충실하고 꾸준하게 주도해 왔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와 시장원리를 기본으로 한 경제개혁이라는 양 축을 바탕으로 꾸준히 외환위기 극복에 매진한 결과 이제는 어느 정도의 안정과 성장의 잠재능력 회복에 성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국민의 정부의 집권철학을 주제로 26일부터 개최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국제회의는 경제위기를 극복해 냈다는 현 정부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개혁은 긴급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탓에 매우 거칠었으며,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장기적인 안목을 담고 있지 못한 면이 있다.

때문에 이룩한 성과에 비해 비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불균형 개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정부.정치권의 개혁실패, 민주노총의 이탈로 가능성이 커진 노사정위원회의 와해, 빅딜분쟁 등 갈등만 조장할 뿐 실질적 내용은 부족한 재벌개혁 등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시장근본주의' 라고까지 불리는 시장 중심의 미국식 자본주의를 너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데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우리가 현재 만병통치약처럼 여기고 있는 시장경제가 또 다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은 최근에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핵심주제로 선택됐을 뿐 아니라 다음달에 열리는아시아.유럽회의 (ASEM) 세미나에서도 비슷한 주제가 채택되는 등 세계적으로 열띤 토론이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경우 현 정부가 시장경제를 근본철학으로 표방했을 뿐 아니라 긴급한 위기상황에서 시장경제의 질적인 문제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크게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사회질서의 장기적 형성 가능성이나 우리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위기극복의 목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주장이 제기하는 시장경제의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시장을 중심으로 세계경제를 재편하고 있는 범세계화 (globalization) 현상이 전세계적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의 원인을 전적으로 지난날의 국가 중심적 자본주의 체제가 갖는 후진성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국제적으로는 국제금융구조 자체의 불안정성이 외환위기를 일으켰다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경제의 기초가 아무리 탄탄한 국가라도 급격한 자본유출입 등 자유화된 자본시장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이 의외로 크다는 지적은 경제체질이 아직 튼튼하지 않은 우리의 정책결정에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외환위기 직전 세계화의 구호 아래 무분별한 개방으로 금융부문의 도덕적 해이와 단기적 자본투기를 자초했던 우리로서는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두번째는 다보스포럼의 주제이기도 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건설이다.

이는 현재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계층간의 갈등이나 소외, 양극화 등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에서부터 출발한다.

물론 자본주의가 엄청난 양적 풍요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업이나 환경.사회적 화합 등 질적 가치라는 측면에서는 적자생존의 철칙이 요구되는 미국식 정글 자본주의가 가져온 폐해가 너무 크다는 반성이다.

우리의 경우 현 정부가 표방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와 결부되게 된다.

국민의 정부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 두 원리를 함께 발전시켜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두 축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러나 시장원리에 입각한 개혁이 가져온 중산층의 붕괴,가정의 파괴, 실업자 급증 등의 부정적 결과는 건전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토대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효율성만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가장 중시하는 자유와 참여의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의 붕괴에 따른 노사정위원회의 위기 같은 최근의 상황이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제 우리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시장에 어떠한 역할과 한계를 지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국제회의가 미리 주어진 주제와 논의의 좁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이같은 다양한 문제에 대해 넓은 시야로 토론하는 장이 됨으로써 우리가 향후 지향해야 할 경제질서에 대해 보다 깊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장현준 에너지경제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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