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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뀔 줄 알았나” 일본 재계 날벼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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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54년 동안 집권한 자민당과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일본 재계가 급격한 정권교체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민주당과 ‘대화 창구’를 뚫어야 하지만 민주당은 냉담한 반응이고 적당한 ‘커넥션’도 없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1일 보도했다. 일본 대기업들의 모임인 게이단렌(經團連)의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孵뵨夫) 회장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과는 긴밀하게 정책 논의를 교환해왔다”며 민주당에 적극적인 ‘구애’ 제스처를 보냈다.

그러나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재계나 각종 이익단체는 야당과는 당 차원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조차 정치자금의 대부분을 정부 지원과 자체 회비 등으로 조달해 왔다. 2007년 기준으로 민주당이 받은 기업·단체 기부금(6억 엔)은 자민당(59억 엔)의 10%에 불과했다. 정치자금이 자민당에만 몰리고 민주당은 찬밥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민주당은 재계와는 거리가 멀고 노조와는 가까운 관계를 형성해왔다.

민주당의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대행은 선거 후 노동조합총연합회인 렌고(連合)를 찾아 선거 지원에 대한 사의를 표시했다. 다카기 쓰요시(高木剛) 렌고 회장은 “민주당에서 요청이 있으면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노조의 밀월’을 예고한 것이다. 민주당은 자민당의 성장 중시에서 사회복지 강화 등 재분배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책수립 과정에서 노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한다는 방침이다. 차기 총리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간부들은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세제지원 정책을 밝히고 있지만 대기업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은 집권하면 3년 내 기업의 정치헌금제도를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오랜 야당생활을 하면서 돈 안 드는 정치를 해온 만큼 집권 정당이 된 뒤에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정치자금에 의존해온 자민당의 돈줄 차단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정권 차원에서 대화할 만한 ‘파이프’나 민주당의 정책결정 과정에 밝은 인사가 없어 당황하고 있다.

물론 재계가 민주당 정치인들과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경제인은 개인적으로는 민주당 정치인들과 접촉해왔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오자와 대표대행과 가장 가까운 재계 인사는 통신기기 회사인 교세라와 KDDI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다. 이나모리는 오자와가 과거 자민당에 몸을 담고 있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다. 오자와는 또 아라키 히로시(荒木浩) 도쿄전력 고문, 미에노 야스시(三重野康) 전 일본은행 총재와도 친분을 갖고 있다. 오자와는 과거 자민당 간사장이있던 1990년대 초반 선거자금을 모으는 역할을 한 적이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가쿠슈인(學習院) 초등부 동급생이었던 미즈노 세이이치(水野誠一) 전 세이부 백화점 사장과 친분을 맺고 있다. 부친이 일본 최대 유통업체인 이온의 창업자인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은 게이단렌 의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 이마이 다카시(今井敬) 명예회장 등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하토야마는 그동안 재계와 거리를 둬왔기 때문에 재계는 민주당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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