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도 구조조정 태풍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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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서두르는 국민회의

국민회의는 정치개혁을 봄 정국의 승부수로 삼고 있다.

지난 1년동안의 혹독한 구조조정과 개혁을 통해 IMF 관리체제의 터널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정치분야에 대한 대수술을 하겠다는 것이다.

안정적 집권기반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18일 조세형 (趙世衡) 총재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간부회의는 이를 위한 구체적 일정을 확정했다.

우선 22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국회 관계법 개정안을 처리하고 이어 다음달 20일께부터 열리는 제202회 임시국회에서는 선거.정당.정치자금 등 나머지 개혁법안을 마무리하겠다는 게 국민회의의 계획이다.

정균환 (鄭均桓) 사무총장은 "사회 각분야가 고통분담과 구조조정을 진행했지만 유독 정치권만은 무풍지대였다" 며 "개혁의지를 분명히하기 위해서도 강도 높은 정치개혁이 불가피하다" 고 강조했다.

경제.외교 등에서 성과를 거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이 먹혀들지 않은 유일한 분야가 정치권이라는, 그래서 더욱 밀도있게 추진하겠다는 결의가 배어 있다.

국민회의가 서두르는 데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16대 총선 (내년 4월 13일) 1년 전까지는 필요한 모든 법적 조치를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구 획정의 적정성 여부를 실사하고 선거일정을 마련할 수 있다.물론 이 대목이 의무조항은 아니지만 말썽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오는 4월 초까지 선거법 개정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

사실 여권이 내키지 않으면서도 한나라당이 단독소집한 임시국회에 22일부터 합류키로 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정치개혁 입법의 시기를 놓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국민회의가 추진하고 있는 정치개혁 입법의 핵심은 현행 2백99명인 의원 정수를 2백50명으로 줄이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 그러나 한나라당은 법안을 제출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한화갑 (韓和甲) 원내총무는 "어쨌든 3월말까지 정치개혁 입법을 완료할 것" 이라며 "한나라당이 법안을 내놓지 않으면 국민회의와 자민련 안만을 놓고라도 국회 정치구조개혁특위에서 논의해야 한다" 고 야권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간.의원 개인간 이해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어 여권이 의도한 일정대로 정치개혁 입법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하경 기자

◇ 자민련의 고민

정치개혁입법 분야중 자민련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목은 정당명부제의 도입과 의원정수.선거구제 등. 자민련은 국민회의가 주력하고 있는 정당명부제의 도입에는 '내각제 개헌' 과 '16대 총선 연합공천' 을 전제로 찬동한다.

다만 방법론에는 차이를 보인다.

2백70명의 의원정수중 지역구 대 비례대표의 비율을 3 (2백4명) 대1 (66명) 로 하자는 게 자민련의 입장. 국민회의의 1대1 안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정당정치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구의원 수를 너무 줄이고 비례대표에만 의존하면 돈 공천.당내민주화 역행이라는 혼선이 온다는 게 표면적 이유. 그러나 정당지지도가 취약한 자민련으로서는 비례대표의 수가 급격히 늘어날수록 손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정당명부제의 경우 자민련은 시.도별 비례대표제 (1인2표) 를 도입하되 한 시.도에서 최다득표 정당이 비례대표의 50%만을 차지하자는 '봉쇄' 조항을 도입한 게 특색. 나머지를 득표비율로 여타 정당이 나누자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설자리가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김학원 (金學元) 사무부총장은 "정당명부제의 취지가 지역감정 해소인 만큼 한 정당의 독식 (獨食) 을 방지하자는 것" 이라고 이를 설명. 영남 및 호남권에서 2등을 노리는 포석이기도 하다.

다만 자민련은 내각제 도입이 실패할 경우 정치개혁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방침이어서 국민회의와의 협의도 만만치 않다.

최훈 기자

◇ 한나라당 입장

한나라당도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정치개혁 총론엔 반대하지 않는다.

의원 총수를 2백70명 내외로, 지역구의원 수를 현행 2백53명에서 2백20여명 안팎으로 축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2월 중 최종 당안을 마련키로 한 한나라당은 그러나 국민회의가 정치개혁의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선 냉담하다.

변정일 (邊精一) 당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은 "전국구 배정을 현행대로 전국 단위로 해야 지역안배.전문성 등을 살릴 수 있을 것" 이라며 국민회의가 지역감정 해소 차원에서 추진 중인 권역별 비례대표안을 일축했다.

정당명부제를 활용한 국민회의의 영남권 진출 교두보 확보를 경계하는 것이다.

영남권 공고화를 의식한 한나라당은 지역구의원 수를 2백20여명선으로 줄이되 지역구와 전국구 비율을 4대1 혹은 5대1로 하는 방향을 모색 중이다.

동시에 현행 지역구 인구하한 기준인 7만5천명을 8만5천~9만명선으로 올리는 방식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호남.강원권에선 의석을 잃게 되지만 영남권에선 그런대로 현재의 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계산한다.

하지만 이같은 의도가 다 먹혀들지도 미지수인 데다 당내 호남위원장들이 중대선거구제 전환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집단 반발하고 있어 골치를 앓고 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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