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올해 파리 컬렉션의 흐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프랑스인들의 패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다는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 흔히 프랑스 3대 부티크라고 불리는 이들 고급 브랜드들 사이에서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나이든 사람만 좋아하는 고리타분한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떨쳐버리지 않고는 불황 중에 계속적인 성장을 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디자이너의 잇단 세대교체. 샤넬이 지난 83년 독일 출신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전격 영입해 '샤넬의 재탄생' 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사례를 응용하고 있는 것. 루이 비통은 미국 뉴욕 태생의 마크 제이콥스를,에르메스는 벨기에 태생의 마르땡 마르지엘라를 최근 기용했다.

이 첨단 감각의 디자이너들이 보수적인 브랜드 색채를 바꿔놓고 있다. 제이콥스의 경우는 실용성을, 마르지엘라의 경우는 반고전주의적 전위성으로 기존 브랜드의 이미지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것. 올 파리의 콜렉션에선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금속성의 스포츠웨어 분위기가 대거 등장했다. 이는 70년대 한때 득세했던 '미래주의' 의 현대적 변형. 세기말을 앞둔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는 지퍼가 달린 상의 또는 휘감는 분위기의 상의에 어김없이 반짝거리는 스팽클을 사용했다. 번쩍거리는 후드 웃옷이 등장했는가 하면 몸에 달라붙는 비대칭풍 상의와 티셔츠로 레이어드 룩을 연출하기도 했다.

루이 비통의 마크 제이콥스는 "세기말적 분위기가 가고 새로운 세기의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는 현지 언론의 평가처럼 지난해 봄 주로 애용되던 회색 대신 흰색.연한 녹색과 연한 보라색을 대거 사용했다.

목욕실 커튼 분위기가 나는 방수소재로 만든 우주복 느낌의 기하학적 망토 '판쵸' 가 파격적이라는 평가.

에르메스의 남성복 콜렉션에는 흘러내리는 편안한 느낌의 지퍼 달린 스웨터와 가죽을 고무 느낌이 나도록 부드럽게 처리한 재킷이 선보였다.

새로 나온 스카프와 가방 등 패션 소품류에도 전통을 벗어나는 변화가 엿보인다.

에르메스가 올해 스카프.넥타이.의류 등 자신들의 제품 주요 테마로 정한 것은 갤럭시 (우주). 새로운 밀레니엄을 다분히 의식한 주제다.

올해 새로 등장한 스카프들은 이전 원색의 무늬들이 반복되는 진한 느낌의 스카프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연한 분홍색과 하늘색의 별.행성 무늬가 드문드문 스카프를 채우고 있다. 하늘과 비행기를 프린트로 차용한 넥타이도 선보였다.

기존 가방에 다양한 변형을 한 신제품으로 상류층 여성들을 손짓하고 있다.

루이비통은 거북이처럼 등에 딱 달라붙는 미니 배낭이나 끈으로 엉덩이.허리 등 어느 부분에나 붙일 수 있는 초미니 가방도 선보였다.

아마존의 고무나무 수액으로 만든 에르메스의 '아마조니아' 같이 가볍고 세탁.방수가 가능한 실용성을 중시한 가방도 등장했다. 샤넬은 옷가방, 화장품가방, 심지어 강아지를 담는 가방까지 기능만을 달리해 세트화한 여행가방 시리즈로 에르메스와 루이비통에 강력히 도전하고 있다.

이런 혁신과 더불어 불황임에도 아시아 시장의 확장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파리에서 8년째 산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샬린 린은 "이들 브랜드들은 다른 중급 브랜드들이 시들해지는 아시아의 불황을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있다" 고 평했다.

중국.홍콩.대만 등에서 이들 톱브랜드의 매장 수는 2~3곳씩 늘어날 전망. 루이비통의 경우 11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홍콩에 기성복 의류숍을 연다.

가방전문점에서 탈피, 다양화한다는 의도다. 이들의 변신 전략이 아시아지역 상류층에게 어떻게 어필할 지 주목거리다.

파리 = 최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