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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33> 항바이러스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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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 바이러스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다. 5월 국내 첫 환자가 보고된 이후 다소 주춤했으나 요즘엔 하루에 100명 넘게 환자가 발생한다. 날씨가 서늘해지면 신종 플루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학자들의 경고가 현실화할 조짐이다. 실제 1918년 세계적으로 2000여만 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도 여름철 전에는 경미하게 지나간 다음 가을부터 두 번째 대유행을 시작해 큰 인명 피해를 냈다. 스페인 독감을 일으킨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역시 신종 플루와 같은 유전자 타입(H1N1)이다. 다행인 건 오늘날 인류는 20세기 초와 달리 타미플루·리렌자 같은 항바이러스제를 보유하게 됐다는 점이다. 각국 정부가 타미플루와 리렌자 확보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들 외에는 별다른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자주 듣는 타미플루(tamiflu)는 어떤 약일까.

심재우 기자

증상 보이면 2일 이내, 5일간 투여…예방 목적 땐 양 절반

신종 플루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 A형이다. A·B·C형 세 가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가운데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건 A·B형이다. B형은 증상이 약하고 한 가지 종류만 존재하지만, A형은 시시각각 상태가 변하면서 대유행과 소유행 독감을 일으킨다.

전 세계적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증식을 약화시키는 약물은 오셀타미비르(상품명 타미플루)·자나미비어(상품명 리렌자)·아만타딘·리만타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아만타딘과 리만타딘은 A형 인플루엔자에만 듣고 투약에 따른 내성 바이러스의 출현 가능성이 커 요즘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타미플루는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리렌자는 영국의 다국적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각각 판매 중이다.

위는 타미플루 아래는 리렌자

타미플루와 리렌자 모두 인플루엔자 A·B형 감염의 치료 예방에 쓰인다. 치료 목적일 때는 증상이 생긴 지 이틀 안에 시작해 닷새간 투여한다. 예방 목적일 경우에도 환자 등과 접촉한 지 이틀 안에 투여해야 한다. 다만 투여량은 치료 목적일 경우의 절반 정도다. 타미플루는 알약으로 먹을 수 있는 데 비해 리렌자는 입으로 들이마시는 흡입제 형태다.

타미플루는 임상시험 결과 75㎎을 하루 2회, 닷새 투여하면 인플루엔자 증상 기간을 30% 정도 단축하는 걸로 나타났다. 또 증상의 심한 정도도 위약을 투여한 환자와 비교할 때 약 40% 감소시켰다. 플라시보라고도 하는 위약은 비타민제 등을 먹게 한 뒤 치료제를 복용했다고 환자를 속여 심리적 요인을 제거하는 비교법이다. 기관지염·폐렴·부비강염 등 합병증의 발생률도 절반으로 떨어졌다.

신종플루는 인체감염·조류·돼지감염바이러스의 조합

신종 플루는 이름만 ‘신종’이지 사실 가장 구형에 속하는 바이러스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표면항원단백질인 H와 N의 종류에 따라 여러 아류 형태(서브 타입)로 나뉜다. H의 경우 9종(H1∼H9), N의 경우 15종(N1∼N15)으로 나뉜다. 발견된 순서로 숫자를 붙이니까 신종 플루의 H1N1은 가장 오래된 유형인 셈이다. 가령 18년 세계적으로 창궐한 스페인 독감은 H1N1형, 57년 아시아 독감은 H2N2형, 68년 홍콩 독감은 H3N2형, 97년 인체 감염을 시작한 조류 인플루엔자는 H5N1형이다.

그렇다면 왜 이번 독감 바이러스에 신종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8개 조각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번 H1N1형 바이러스 유전자는 조성이 독특하다. 인체감염·조류·돼지감염 3종 바이러스의 새로운 조합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H1N1 앞에 신종이란 말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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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표면단백질, 바이러스 끌어들이는 역할

H는 헤마글루티닌(Hemagglutinin)을, N은 뉴라미니다제(Neuraminidase)의 첫 글자다. H는 바이러스가 인체 감염 초기에 호흡기 세포에 달라붙기 위해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특정 단백질을 인지하고 바이러스를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포 내로 들어간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면서 새끼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문제는 새로 만들어진 바이러스를 세포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여기에 관여하는 효소가 N이다. 감염 세포의 막에서 바이러스가 떨어져 나가 또 다른 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도록 가위 같은 역할을 한다.

일부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의 경우 감염된 세포를 터뜨리면서 증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바이러스는 대개 오래가지 못한다. 자체적으로 증식하지 못하는 바이러스의 특성상 건강한 숙주가 생존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99년 아프리카 콩고에서 발병한 에볼라 바이러스가 일례다. 순식간에 200여 명의 목숨을 앗아 갔지만 열흘 만에 숙주를 몰살시킨 탓에 바이러스 또한 더 이상 번지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신종 플루의 경우 숙주 세포의 영양소와 에너지원을 빼앗을 뿐 세포를 빠르게 죽이지는 않아 ‘영리한’ 바이러스로 통한다.

타미플루와 리렌자 모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가위 역할을 하는 N에 작용한다. 감염된 세포에서 바이러스가 떨어져 나오지 못하게 한다. N이 가위 역할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위에 타미플루나 리렌자가 끼어 들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문을 여는 열쇠 구멍에 성냥개비 같은 이물질을 끼워 넣어 열쇠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원리를 떠올리면 된다. 바이러스가 증식하지 못하면 건강한 세포가 감염되는 비율을 낮춘다.

타미플루, 리렌자 누르고 시장 점유율 90%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에이즈 바이러스와 함께 대표적인 RNA 바이러스다. 유전 정보를 인간과 같은 DNA가 아니라 RNA에 담는다. RNA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잘 일어나는 편이다. 다시 말해 ‘변신의 귀재’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변종이 나타날 수 있다.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접종을 할 때 해마다 다른 백신을 쓰는 연유다.

과학자들이 신종 플루 인플루엔자 같은 독감 바이러스를 퇴치할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온갖 아이디어를 짜 봤지만 인플루엔자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치료제를 개발하고 나면 변종으로 탈바꿈해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내에서도 좀체 변하지 않는 부위를 찾아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뉴라미니다제, N효소였다. N효소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호주의 피터 콜먼 박사는 N효소가 가위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저해제를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알약으로 복용하는 경우에는 효과가 없고, 입이나 코에 분사해야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흡입제 형태로 만들었다. 글락소웰컴(현 GSK)이 이를 사들여 상품화했다. 99년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승인을 받았다.

타미플루를 처음 개발한 회사는 미국의 신생 제약사 길리어드다. 타미플루 개발을 주도한 이는 재미 한국인 과학자 김정은 박사였다. 그는 94년 네이처에 실린 리렌자 관련 논문을 보고 타미플루를 구상했다. 리렌자의 특허권 범위를 빠져나가면서 새로운 형태의 치료제 개발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인플루엔자 치료제를 먹는 알약으로 개발하면 리렌자보다 개발은 늦지만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96년 김 박사팀이 개발에 성공해 스위스의 로슈가 특허권을 사들였다. 99년 미국·캐나다·스위스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먹는 타미플루는 이후 흡입하는 리렌자를 누르고 시장의 90%를 차지하게 됐다.

“타미플루 내성 바이러스 출현, 약 2~3종류 복용해야”

그러나 이제 리렌자가 반격을 시작할 태세다. 알약 복용약인 타미플루가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상품명이 됐지만 최근 겨울에 유행하는 H1N1 바이러스 상당수가 타미플루에 내성을 나타내는 걸로 보고됨에 따라 그동안 덜 주목받은 리렌자가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세대 성백린(생명공학과) 교수는 “리렌자에서는 내성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존 타미플루 내성 바이러스에도 리렌자가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 전 국민의 50%가 사용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하면서 그중 3분의 1을 리렌자로 충당했다. 프랑스의 경우 항바이러스제의 28%를 리렌자로 비축했다.

그러나 길게 보면 리렌자에 대한 내성도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성 교수는 “인플루엔자의 내성이 출현하는 걸 막으려면 두세 가지 이상의 항바이러스제를 병용 투여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에이즈 바이러스다. 세 가지 약제를 동시 투여하는 ‘칵테일’ 방식으로 내성 바이러스의 출현을 지연시켰다.


국내서는
새 치료제 개발 막바지 … 타미플루 복제 채비도

녹십자 화순공장에서 계절독감백신이 생산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제약업계는 신종 플루 치료제를 독자 개발해 놓지 못했다. 그래서 타미플루·리렌자 같은 치료제를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타미플루의 경우 2016년까지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생산과 판매의 독점권을 갖는다.

우리 정부는 전체 인구의 11%에 해당하는 531만 명분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인구 대비 20% 비축량을 확보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공무원들이 몸소 유럽을 돌며 백신과 치료제 확보에 나선 배경이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타미플루를 국내에서도 생산할 수 있도록 강제실시권 발동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제약업계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보다는 타미플루의 복제약 생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웅제약은 최근 타미플루 원료 합성기술 등 복제약 생산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삼진제약·대한뉴팜·한국유나이티드제약·LG생명과학·한미약품·종근당·유한양행·일양약품 등 10여 개 사가 타미플루 복제약 생산과 확보에 적극 나섰다.

이들과 달리 녹십자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마무리 짓는 중이다. 미국 존슨&존슨사에서 판권을 사온 주사제 ‘페라미비르’다. 녹십자는 일본 제약사 시오노기와 공동으로 한국·일본·대만에서 다국가 임상시험을 해왔다. 지난달 마지막 단계인 임상 3상 시험에 성공해 정부의 판매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뉴스 클립에 나온 내용은 조인스닷컴(www.joins.com)과 위키(wiki) 기반의 온라인 백과사전 ‘오픈토리’(www.opentory.com)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세요? e-메일 기다립니다. newscl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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