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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 탐사] DJ·노무현 이후의 빈 자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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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정세균 대표는 “민주당은 고아다. 아버지 같은 분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고아는 감정의 과장 같다. 하지만 그 말은 자신이 ‘김대중(DJ) 적자(嫡子)’ 임을 은근히 표출한다. 정동영 의원은 “적자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대선후보를 지냈다”고 말한다. 노선의 적통(嫡統)임을 시사한다. 두 사람은 DJ 이후 호남의 맹주를 자임한다.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의 결집은 DJ의 유언이다. 그 세력의 주축은 진보와 좌파다. 실천은 힘들 것이다. 그 한 축인 친노 그룹은 민주당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 세력은 일단 DJ의 유지(遺志)를 한목소리로 말한다. 이명박 정권 아래 민주주의·남북관계·서민경제 위기론이다. 하지만 그 속에 모순이 있다. DJ의 상징인 햇볕정책이 특히 그렇다.

남북 관계 위기는 그들에겐 햇볕 정책의 위기다. 햇볕 정책은 이미 노무현 정권 때 치명상을 입었다. 햇볕의 결실은 6·15 정상회담이다. 그 회담을 놓고 노 정권 초기에 특검 수사가 있었다. 현대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이다. 불법이어서 수사는 불가피했다. 그 과정에서 퍼주기, 뒷돈 들인 회담 논란은 햇볕의 부정적 인상을 국민에게 심었다. DJ는 “특검은 안 했어야 했다. 민족의 비극”이라고 회고했다. 그 수사는 신구 권력 대결의 측면이 있었다. 세력 결집은 쉽지 않다.

두 전직 대통령이 떠난 공간은 크다. 그걸 메울 역량과 통찰이 추종자들에겐 부족하다. 구심점이 될 인물은 아직 없다. 그럴수록 유훈 아래 있는 게 편하다. 유지에 충실하면 의리 있다는 평판을 얻을 수 있다. 유훈 정치는 위험 부담이 적다.

하지만 DJ·노는 달랐다. 평면적인 따라하기를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DJ는 “위대한 사상가의 책을 읽어도 내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을 바탕으로 경세가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예술을 평할 때도 자기 목소리 아닌 전문가 흉내를 내는 게 제일 나쁘다”고 했다.

그는 백범 김구를 “애국자로서 매우 존경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때 백범 기념관도 건립했다. 그러나 김구의 정치적 선택을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그분이 (강대국의 한반도) 신탁통치를 반대할 생각이면 남한의 5·10 단독선거에 참여했어야 했다. 그리하여 남한의 실권을 쥐고 통일을 추진했어야 했다. 그분은 신탁통치도 단독정부 수립도 반대했다.”

노무현은 ‘새 시대의 맏형’이 되려고 했다. 구시대의 막내에 그쳤다고 아쉬워했다. 그만큼 3김 정치의 틀을 깨려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기성 질서에 편승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그는 수도 이전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으려 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포기한 구상이다. 수도 이전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꿈꾸지 못한 거대한 야심이었다.

야당 시절 DJ는 이렇게 강조했다. “후배 정치인들은 패기가 부족하다. 스스로 힘으로 크려는 노력들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회가 오면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죽음은 야권의 위기다. 동시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기회다. 두 전직 대통령이라면 누구의 유산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빛과 그림자를 분리, 수용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적통과 적자의 자세다. DJ의 화해와 통일 추구, 노무현의 국민 눈높이 권력은 긍정적 유산이다. ‘포스트 DJ·노’의 야망을 가졌다면 그것을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부정적 유산은 퇴출시켜야 한다. 3김 시대의 지역주의, 노무현 시대의 적과 동지로 나누는 이분법적 접근이 그것이다. 그리고 민주 대 반민주의 낡은 틀을 깨야 한다.

국민은 정치의 새로운 언어, 새로운 방식을 원한다. 용기와 비전, 건강한 권력 의지를 가진 자가 ‘DJ·노 이후’를 장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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