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예찬 4인 4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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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막걸리는 나에게…”

막걸리는 여운을 남기는 술이다. 달콤쌉싸름한 첫맛 뒤엔 언제나 친구어머니우정애환그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래서 막걸리는 때론 향수를 부르고, 때론 허전함을 달래준다. 명사 4인에게 막걸리 예찬론을 들었다.

한동직 동부자산운용 대표 “둘도 없는 친구”

2007년 동부자산운용 한동직(54) 대표는 정들었던 대한투신을 떠나 새 둥지를 틀었다. 1982년 대한투신에 입사한 후 25년 만의 이적. 성에 차지 않는 점도, 바꾸고 싶은 것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한 대표는 동부자산운용의 전통을 중시했다. 그가 처음 한 일은 매달 열리는 직원 생일잔치에 막걸리를 살짝 추천했을 뿐. 가벼운 첫걸음 같지만 여기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한 대표는 막걸리를 소통의 창으로 활용했다. 막걸리를 마시며 직원들의 애환을 느끼려 했다. 그에게 막걸리는 그냥 술이 아니다. 우정을 다지고, 새롭게 도전할 용기를 주는 동지다.

한 대표가 꼽는 막걸리의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값이 싸다. 한 사발 두 사발 홀짝홀짝 먹으면 금세 배가 불러와 과음할 염려도 적다. 맛이 일품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무엇보다 은근히 오르는 취기가 조급했던 마음을 달래주고 삶의 여유를 주는 것 같아 좋단다. 한 대표가 막걸리를 ‘둘도 없는 친구’라고 말하는 단순하면서도 특별한 이유다.

홍석우 중소기업청장 “중소기업의 애환”

막걸리 예찬론자를 꼽으라면 항상 1순위로 거론되는 사람이 있다. 홍석우(56) 중소기업청장이다. 그가 애주가여서도, 막걸리를 잘 마셔서도 아니다.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은 ‘혼돈주’를 즐겨서도 아니다. 홍석우 청장은 막걸리를 마시며 중소기업의 애환을 느낀다. 막걸리 제조업체 대부분이 중소기업 또는 향토기업이기 때문이다. 때론 애국심도 느낀단다. “아무래도 우리 술이기 때문 아닐까요?”

홍 청장은 막걸리 열풍에 대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이제야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고, 지금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 막걸리를 알릴 수 있는 호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시시때때로 “막걸리가 한식의 대표 음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세제 지원 등 정부의 적극적인 막걸리 지원책이 필요하고, 또 효율적으로 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두칠 전 동부시스템즈 부회장 “소통의 묘약”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4년 12월 서 전 부회장을 글로벌 경영자 25인에 선정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부분의 한국 CEO들은 ‘나를 따르라’고 하지만 그는 ‘함께 가자’고 한다. 종업원들과 막걸리에 삽겹살을 먹으면서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게 그의 특징이다.”

“회사 대표가 값비싼 양주나 와인을 먹는 다른 세상 사람이 아니고,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막걸리는 도수가 낮은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며 “막걸리를 마실 때 나온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고 실천에 옮기면 직원들의 마음이 열린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회생 가능성 제로로 낙인 찍혔던 한국전기초자를 1년 만에 살려냈다. 2002년 취임한 통신장비 제조업체 이스텔시스템즈(현재 동부시스템즈)도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이들 회사가 되살아난 요인 가운데 하나는 막걸리로 소통한 리더십이었다.

그는 최근 섬유기계 전문업체 이화글로텍의 회장에 취임했다. 역시 경영난 해소가 그의 임무다. 그는 오늘도 직원들과 소통을 꾀한다. 수단은 역시 막걸리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 “어머니 같은 존재”

그는 애주가다. 일주일에 네번가량은 술의 매력에 빠진다. 특히 막걸리를 즐긴다. 친근한 매력이 그만이란다. 서울대 김난도(46) 교수는 최근 일고 있는 막걸리 열풍을 트렌드로 이해한다. 막걸리가 주목을 끌 수밖에 없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최근 트렌드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여성성이다. “쇼핑을 생각해보죠. 남성은 사는 데 집중하지만 여성은 사는 과정을 즐깁니다. 그만큼 결과 보단 과정을 중시한다는 이야기죠. 요즘 술자리는 ‘먹고 놀고 취하자’는 식이 아닙니다. 또 다른 소통의 공간으로 여기죠. 그런 의미에서 막걸리는 제격입니다.”

막걸리를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물었다. 대뜸 ‘어머니’라고 그는 답했다. 몸에 좋고, 그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그렇단다. 게다가 은은히 빛나는 우유 빛깔까지 꼭 닮았다.

김 교수는 막걸리의 장점을 하루 빨리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막걸리의 수많은 장점을 잘 활용하면 세계적 명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찬ㆍ최은경ㆍ임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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