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검찰 인사제도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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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는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국가와 사회를 형성한다.

성현도 군자도 아닌 보통사람들은 각자의 이익부터 챙기고자 하는 성향이 있으므로, 도처에 사회적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사회적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법이요, 공권의 힘으로 법을 집행하는 것이 사법기관의 임무다.

그러므로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가 검사와 판사들의 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국가에서 법은 만인에게 공평히 적용돼야 한다.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고 판.검사 자신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예외가 될 수 없다' 함은 사사로운 배려로 특혜를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법을 행사하는 사람은 항상 엄정중립을 지켜야 한다.

검사와 판사가 엄정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가령 대통령에게 잘 보이느냐 못 보이느냐에 따라서 검찰총장의 자리가 왔다갔다 한다면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건을 맡은 변호사로부터 돈이나 향응을 받은 부담을 가진 검사나 판사는 그 돈을 주거나 향응을 베푼 변호사가 맡은 의뢰인의 사정을 고려하도록 마음이 움직이기 쉽다.

'법조비리' 니 '전관예우' 니 '행정부의 시녀' 니 하는 부끄러운 말들이 법조계 주변에 나돈 것은 결코 작금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 의정부의 법조 비리가 있었고 최근에는 대전의 법조 비리가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으나, 이것은 과거에는 덮어두었던 것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힘이 근래에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화위복 (轉禍爲福) 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시적으로 흥분하고 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의식의 전환도 필요하고 제도의 개혁도 필요하다.

우선 판.검사의 가치관 정립이 요청된다.

운동경기를 훌륭한 작품으로 연출함에 있어서 심판의 공정성이 기본이듯이, 한 나라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함에 있어서 판.검사의 구실이 절대적이라는 뜻에서, 법조인의 지위는 매우 명예롭고 보람된 자리다.

그 명예와 보람에 삶의 최고의 영광이 있는 것이며, 그 위에 돈이나 권력까지 얻으려 하면 개인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불행한 일이 생기게 된다.

이런 점을 깊이 고려해 사법연수원의 교육과정에서 예비법조인들의 인성교육에 많은 비중을 두도록 획기적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검찰의 중립이 보장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검찰총장 임명권이 대통령에게만 집중된 제도 아래서는 검찰의 중립을 기대하기 어렵다.

검찰총장을 위시한 검찰 수뇌부의 인사는 원로 법조인과 학계인사를 포함한 위원회가 추천한 인물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제도를 생각해볼 만하다.

검사는 대통령의 비리조차도 고발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여자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것은 보기에 딱한 일이기는 하나 검사에게 그만한 힘이 있다는 것은 우리로서 부러운 일이다.

이번의 법조 비리 사건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법조계 인사들 중에서 옥 (玉) 과 잡석을 분간하는 높은 안목이 일반 국민에게 생기는 동시에 용기있고 청렴결백한 법조인을 신뢰하고 존경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에 국한된 부끄러운 현상을 전체에 확대해서 모개로 매도하는 풍조를 흔히 본다.

이러한 풍조로 인해 존경받을 만한 법조인들의 사기까지도 꺾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도 진실로 훌륭한 법조인이 많이 있다.

그런 분들이 자포자기하고 법조계에 대한 애착을 잃는 일이 있다면 이것은 더욱 큰 불행이다.

아울러 한가지 더 바라고 싶은 것은 이번에 '항명사건' 으로 뉴스의 중심인물이 된 심재륜 (沈在淪) 대구고검장이 옥인지 잡석인지 또는 그 중간에 위치하는 사람인지 엄정하게 가려지도록 관계당국이 공정하게 처리하는 일이다.

법조계의 위상은 국가 전체의 위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다.

작금의 법조계 비리 사건은 우리나라 전체의 무질서한 현실의 한 단면이요, 또 이 법조계의 비리는 우리나라 현실 전체의 부정과 혼란으로 파급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번에 부각된 법조계 비리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은 한국 전체의 내일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법조계의 문제는 결코 법조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법조계에만 책임이 있는 문제도 아니다.

각계각층에서 한 자리씩 맡고 있는 우리 모두가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를 염두에 두고 민주적이고 질서정연한 민주국가를 세우는 일에 대국적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태길 철학문화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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