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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은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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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나이 서른인 전문 MC 김제동. 그의 별명은 '언어의 마술피리'다. 그는 말을 참 재미있게 한다. 그가 방송 중 한 말들이 '제동어록'으로 인터넷에 떠돌 정도다. 그는 입심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매일 네개의 일간신문을 읽는다. 언젠가 그와의 인터뷰 끝자락에 꿈이 뭐냐고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와 예절을 몰라 '사고'를 치기도 합니다. 그들을 재담으로 웃기고 싶습니다. 유머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관습을 익히게 하려고요."

김제동은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한두시간씩 영어 공부를 한다.

가수 패티김과 최희준씨의 꿈은 목소리를 지켜 데뷔 50주년이 되는 2009년까지 무대에 서는 것이다. '간(肝)박사' 김정룡씨의 꿈은 C형 간염 백신 개발을 끝내는 일이다. 천하장사에서 개그맨으로 변신한 강호동의 꿈은 지금보다 더 많이 시청자들을 웃기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늘도 소중한 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요즘 꿈을 상실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기업인들이다.

최근 만난 화섬업체 사장 A씨. "꿈요? 잃어버린 지 오래됐습니다. 중장기 계획은 세울 엄두도 못 냅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넘기는 데 급급합니다. 하루살이에게 어디 내일이 있나요.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다고 닦달하지만 여유가 있는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온갖 규제로 뒷다리는 정부가 잡아놓고 '기업이 투자하지 않아 경제가 어렵다'고 오히려 몰아세웁니다. 돈벌 일이 있는데 투자하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습니까. 돈버는 게 기업의 목적인데…. 다 불안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지요."

금속업체 사장 B씨의 불만은 더 직설적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한국이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할 분위기입니까.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참수하는 패러디를 인터넷에 올리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CEO가 노조와 줄다리기하는 데 업무의 절반 이상을 보내고서 언제 신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해외 거래처를 넓힙니까. 할 수만 있다면 다 팔고 이민가고 싶습니다."

이처럼 기업인들이 꿈을 상실하고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2005, 2010년에 우리 회사를 이렇게 반듯하게 키우겠다는 발표가 줄을 이었다. 5년, 10년 뒤 매출 및 수익 목표와 함께 특정 분야에서 세계 몇 대 기업으로 우뚝 서겠다는 청사진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장기 계획'을 발표하는 기업을 찾기 힘들어졌다. 경기가 나빠진 탓도 있지만 CEO가 그런 데 신경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경기를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업인의 기(氣)를 살리고 그들이 꿈을 갖게 하는 것이다. 기업인이 흥겹고 기업이 잘돼야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월급이 제대로 나오며 세금도 많이 걷힌다.

기업은행은 지난 2일 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 등 중소기업인 네명을 선정해 '중소기업인 명예의 전당'헌정식 행사를 했다. 한 우물을 파는 뚝심으로 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한 기업인을 기리기 위한 행사다. 이처럼 기업인의 기를 살리는 일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회사의 CEO를 '스타'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할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들인 노력을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그래야 10만명, 100만명을 먹여살리는 훌륭한 경영인이 탄생할 수 있다. 기업인이 꿈과 희망을 먹고 살아야 나라가 건강해진다.

김동섭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