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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어린이 '또래 문화' 나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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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소년 '볼도'는 8세. 집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360㎞ 떨어진 시골. 친구도 이웃도 없는 그에겐 가장 가까운 벗이 '말'이다. 집의 가장 큰 재산이기도 하다. 어느 날 부모는 양털 팔러 도시로 가고, 볼도 혼자 집을 보게 된다. 그런데 큰 일이 벌어졌다. 물을 먹이러 갔다가 실수로 말이 늪에 빠진 것. 안돼! 말을 구하기 위한 소년의 분투가 시작된다.(몽골 MRTV작 '볼도와 말')

한국.일본.중국.말레이시아.몽골.홍콩(중국과 별도 추진) 등 아시아 6개국이 어린이 드라마를 함께 만들어 교환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각국 공영방송들이 한가지 주제로 작품을 만든 뒤 돌려가며 방송하는 식이다. 아이디어도 나눈다. 몽골 초원에서 갓 촬영을 시작한 '볼도와 말' 등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어린이 프로그램 공유' 구상은 아시아권에선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유럽에선 20여개국이 18년째 비슷한 제도를 운영해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어린이들이 다른 나라의 또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이 프로 자체가 없는 나라가 많은 아시아에선 꿈같은 얘기였다. 그러다 2년 전부터 구체적 얘기가 오갔고, 올 상반기 6개국이 의기투합했다. 총책임PD는 EBS의 정현숙 어린이팀장이 맡았다. 그는 다음달 21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ABU(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총회에서 100여개 참가국들에 이 같은 계획을 보고한다.

정 팀장에 따르면 올해 주제는 '7~9세 아이들의 성장기'. 더빙과 자막은 '불가'라고 한다. 화면과 표정을 통해 가감없이 내용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다. 내레이션만 최소한으로 허용된다. 현재 나라마다 진척 속도는 다르지만, '올해 말 완료'라는 목표에는 무리가 없다고 한다. 일본 NHK의 경우는 속도가 가장 빨라 대부분의 촬영이 끝난 상태. NHK는 외국 근무를 마치고 2년 만에 돌아오는 아빠를 맞이하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빠가 오므라이스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둘은 요리 준비를 하는데, 실수 연발이다. 결국 음식은 만들지도 못하고 지쳐 잠들지만 아빠에겐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선물이다.

정현숙 팀장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건 유연한 사고를 갖춘 성인으로 성장하는 토양이 된다"며 "유럽에서 벌써부터 교환 제의를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경우 아마 올 겨울방학에 몽골 초원을 누비는 '볼도'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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