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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마샤오춘, 삼성화재배 2차전등 연속10회 대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이창호와 마샤오춘 (馬曉春) 이 다시 한번 운명적인 대회전을 펼친다. 2월초의 삼성화재배와 3월의 LG배. 도합 10번기. 한국의 천재기사 이창호9단과 중국의 귀재 마샤오춘9단은 3년전인 96년에도 전면전을 벌였다.

당시 첫판에선 마샤오춘이 이창호를 꺾었다. 그러나 전략가 이창호는 이후 마샤오춘을 요리해 10연패의 늪에 빠뜨린다. 이번에도 첫판은 마샤오춘의 승리. 그는 심기일전의 새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이창호는 슬럼프 설이 나도는 가운데 긴 침묵에 잠겨있다.

99년 세계바둑의 판도를 가름할 양웅의 10번기는 과연 어떤 스토리로 끝나게 될까. 제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5번기 제2국은 2월 1일 을지로1가 삼성화재 본관 3층 특설대국장에서 열린다. 3국은 3일, 4국은 5일, 5국은 8일 같은 장소에서 잇따라 펼쳐진다.

삼성화재배 결승 첫판은 지난해 12월에 이미 열려 마샤오춘9단이 이9단을 흑불계로 꺾었다. 이때 이9단은 몇번의 난조 끝에 힘없이 무너졌다. 그 무기력함을 놓고 "감각이 어딘지 이상하다" 며 걱정하는 측과 "천하강자라도 질 때는 다 무기력하게 보이는 법" 이라며 낙관하는 측으로 나뉘었다.

곧이어 이9단이 국수 타이틀을 조훈현9단에게 내주고 프리텔배에서도 유창혁9단에게 무너지자 이창호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이창호도 사람인 이상 천부의 부동심이나 승부 감각이 흐트러질 수 있으며 지금이 그때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TV중계 문제로 결승1국이 끝난지 거의 두달만에 2국이 이어지게 됐을 때 바둑계는 내심 시간을 벌었다는 분위기였다.

정작 당사자인 이9단은 슬럼프 설에 대해 희미한 미소와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필름을 거꾸로 돌려 3년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 마샤오춘은 후지쓰배와 동양증권배를 모두 제패하고 세계 최강으로 떠올라 있었기에 국제전에선 부진하지만 실력에선 세계 1위로 꼽히는 이창호와의 대결이 팬들의 관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96년 2월 베이징 (北京) .두 사람은 진로배에서 맞부딪쳤다. 마샤오춘은 중국팀 주장이고 이창호는 한국팀 주장. 여기서 이9단은 마샤오춘9단의 극단적인 실리전법에 걸려 패배하고 만다.

며칠 뒤 두 사람은 동양증권배 우승컵을 놓고 서울에서 다시 만나 1승1패로 각축한다. 그런데 5번기의 기로였던 제3국에서 이창호는 피말리는 사투 끝에 역전 반집승을 거두면서 팽팽하던 저울추가 급격히 기울게 된다.

이창호는 마샤오춘의 실리전법이 지닌 허점을 포착해 이때부터 97년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에서의 '귀신곡할' 반집승에 이르기까지 도합 10연승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이창호9단이 마샤오춘에게 15승4패라는 압도적인 전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9단의 실력이 한참 높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실상을 들춰보면 백지 한장 차이에 불과하다.

이9단은 특유의 부동심으로 격차를 넓히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샤오춘에게 물어보면 96년 동양증권배 결승3국에서의 반집패가 10연패를 만들어낸 원흉이라고 애통해 한다.

실력 면에선 49대51로 엇비슷하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팬은 물론이고 냉정하다는 프로기사들까지도 "결국은 이창호가 이긴다" 며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이번 대결에서 마샤오춘이 패한다면 그는 심리적으로 치명상을 입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9단도 이번만은 긴장상태다. 1패를 안고 있는데다 모두들 1백% 이긴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훨씬 부담스러운 것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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