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거국적 안보외교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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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99년을 맞아 우리는 국가안보에 관해선 가능한한 거국적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하고 핵 및 기타 대량 살상무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선 확고한 한.미.일 공조가 필요하고 이를 국내에서 뒷받침하기 위해선 대북 (對北) 정책에 대한 정쟁화 (政爭化) 를 피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단합해야 한다.

올해에 한반도 안보를 좌우할 최대 관심사는 역시 북한 핵 및 미사일 억제 문제다.

북한이 의혹을 받고 있는 금창리 및 기타 지하시설에 대해 투명한 현지접근을 허용하고 탄도미사일 개발 및 발사도 중단한다면 한.미 양국은 현재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포용정책을 계속하고, 나아가 더욱 항구적인 협력 및 평화장치도 협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이를 거부하고 또 다시 벼랑끝 행동을 취한다면 긴장과 대결상황이 재연될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이 땅에서 재래식 전쟁과 핵확산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비해 한국은 미.일과 대북정책을 효과적으로 조정하고 중국 및 러시아의 건설적 협력을 얻어내야 한다.

이것을 달성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당면과제다.

지난해에 클린턴 행정부는 전직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를 조정관으로 임명해 대북한 정책을 재검토하도록 했다.

지하시설에 대한 핵의혹이 제기되고 있던 지난해 8월 31일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갑자기 발사하자 미 의회는 클린턴 대통령으로 하여금 대북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도록 입법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페리 조정관은 곧 평양을 방문해 핵의혹과 미사일계획에 대한 북한의 능력과 의도를 확인한 뒤 클린턴 대통령에게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여기서 미국은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보유가능성과 그것이 전쟁억지와 한.미 및 미.일동맹에 미칠 영향을 철저하게 재평가할 것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북한당국이 핵 및 기타 대량 살상무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혹을 말끔히 씻고 한국당국과 평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협상을 진지하게 개시해 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앞으로 올 수 있을 심각한 사태를 면할 수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북한이 제네바핵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는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와 지하시설 및 미사일문제를 분리시켜 재연될 수 있는 긴장상태를 피해보려는 데 고충이 있다.

그러나 1994년의 상황과는 달리 미국 및 일본의회의 강경한 입장이 이러한 분리협상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는 6월 1일까지 북한이 지하시설에 대한 현장접근과 미사일수출 중단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미 의회는 중유공급에 대한 예산집행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탄핵에 몰리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해 의회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일본 국회도 북한이 핵의혹과 미사일 발사를 계속한다면 경수로 건설에 대한 10억달러 지원은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치적 현실은 한.미.일간에 정책조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한국과 미.일은 한반도에서 전쟁억지와 비핵화에 대해서는 공동목적을 추구한다.

다만 이것들을 실현하는 방법과 우선순위에서 우리는 전쟁억지를, 미.일은 비핵화를 더욱 중시하는 면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우리는 미.일과 함께 중국 및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동북아 지역안정과 범세계적 핵확산금지를 위해 추구하는 전략과 우리가 한반도에서 전쟁억지를 위해 추구하는 국지전략간에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하고 공동전략을 수립하는데 모든 외교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탈냉전기의 국제정치에서는 대외협상을 비준할 수 있는 국내지지 확보가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상호보완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대외정책은 국내지지와 국민동의 없이는 성공할 수 없게 돼 있다.

이제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본격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는만큼 대북협상도 이 헌법기관에서 수립되고 정리된 국가전략에 근거해 일관성있게 실시해야 한다.

미.북협상에서도 우리가 줄곧 주장해온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이 이행될 수 있도록 한.미간에 사전합의를 이뤄 두어야 할 것이다.

이같이 안보정책 수립 및 집행과정에 정부는 야당을 비롯해 언론.학계 및 기타 비정부조직들과도 정보를 공유하고 협의해 참된 의미의 국민적 합의를 결집해야 한다.

1999년은 한국경제와 정치의 앞날을 결정할 운명의 한 해다.

지속적인 경제회복과 정치발전을 지탱하기 위해서도 평화로운 남북관계가 필요하다.

평화와 안보를 지키는 데는 여도, 야도 있을 수 없으므로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안병준 연세대 정치학 교수

◇ 필자 약력

▷63세▷연세대졸.미 컬럼비아대 정치학박사▷미 웨스턴 일리노이대 교수▷연세대 정외과교수 (현) ▷한국국제정치학회장 역임▷저서 : '탈냉전기의 국제정치와 한반도 통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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