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적 디자인도 저작권으로 보호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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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한국 대표팀 감독이 승리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할 때마다 함께 출렁였던 이른바 '히딩크 넥타이'.

대법원은 최근 가짜 히딩크 넥타이를 제작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관광공사 등에 "도안의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 저작권 보호 대상"이라며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1, 2심 재판부는 이 넥타이 디자인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응용미술을 이용한 디자인의 저작권을 폭넓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한국 디자인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벽지.커튼.옷감의 무늬, 커피잔 등 그릇에 그려진 그림, 가구의 조각 등 디자인도 독창성이 인정되면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히딩크 넥타이 저작권 논란=이 넥타이는 산업디자인 전문회사 '누브티스'의 이경순(47.여)대표가 히딩크 감독을 위해 특별 제작해 선물했다. 이씨는 푸른 바탕에 한국인의 기(氣)와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 문양, 건(乾).곤(坤).감(坎).리(離)의 4괘를 포함한 팔괘 문양을 상하.좌우로 반복 배열한 흰색 도안을 그려넣었다.

월드컵 특수에 힘입어 이 넥타이는 2003년 초까지 한달에 약 4000개씩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가짜가 나돌기 시작했다. 한국관광공사도 지난해 4월 해외귀빈 선물용으로 이 넥타이 530개를 임의로 제작했다. 이에 검찰은 관광공사를 저작권 침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1, 2심 재판부는 "넥타이 도안은 전통 문양을 응용한 것으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응용미술 작품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까다롭게 적용했던 기존 판례를 따른 것이었다.

◇"디자인의 저작권 인정 확대돼야"=국내에서 디자인은 의장권과 저작권으로 보호된다. 의장권은 특허청에 디자인을 출원, 등록해야 한다. 기간은 최소 3개월이 걸리고 비용은 건당 수십만원이다. 반면 저작권은 별도의 절차 없이 창작 시점부터 권리가 인정된다.

두 권리의 차이점은 미국 직물회사의 꽃무늬 도안을 임의로 사용해 기소된 대한방직에 대한 1996년 대법원 판결이 기준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생산된 응용미술 디자인은 의장권으로 보호하고, '고도의 예술성과 독창성'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저작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한 디자인은 저작권이기보다는 의장권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판례에 대해 디자이너들은 "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반발해왔다. 직물 등의 경우 영세 업체들이 수십개의 디자인을 일일이 의장권 등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저작권 보호에서도 제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도 지난해 말 월드컵 때 큰 인기를 얻었던 '비더레즈' 티셔츠의 글씨 디자인을 고안한 박영철씨가 붉은악마 광고대행사를 상대로 낸 저작권 확인소송에서 "작자의 독자적인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김현철 연구원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각 업체나 소비자들이 저작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 바로잡습니다

8월 11일자 8면 '상업적 디자인도 저작권으로 보호해야' 기사에서 '히딩크 넥타이'(右)로 소개된 사진은 히딩크 넥타이가 아니라 히딩크 넥타이를 만든 회사의 다른 제품이었기에 바로잡습니다. 경위는 이렇습니다. 10일 오후 처음 제작된 신문에는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맸던 히딩크 넥타이가 실렸습니다. 히딩크 넥타이(左)는 푸른 바탕에 태극 문양과 건(乾).곤(坤).감(坎).리(離)의 4괘를 상하.좌우로 반복 배열한 흰색 도안을 그려 넣은 것입니다. 저희는 며칠 전 히딩크 넥타이를 확보해 회사에서 직접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야근자들 사이에 "좀더 자연스러운 사진을 싣자"는 의견이 나와 사진을 다시 찍기로 했습니다. 급히 히딩크 넥타이를 찾는 모습을 본 한 기자가 "내것이 히딩크 넥타이"라며 자신의 넥타이를 풀어줬습니다. 이렇게 해서 새로 찍은 사진이 실린 신문을 가정에 배달하게 됐습니다.

히딩크 넥타이를 고안한 이경순씨는 11일 아침 신문을 보고 본사로 전화를 걸어와 신문에 난 것은 히딩크 넥타이가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확인한 결과 이 기자의 것은 히딩크 넥타이가 아니었습니다. 이 기자의 넥타이는 히딩크 넥타이를 만든 회사의 제품 중 하나였지만 히딩크 넥타이와는 문양 등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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