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7일부터 A&C코오롱 단편영화 13부작 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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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0여분 이상 다리 모습만 보인다.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주 느린 속도로 갖은 모양의 다리가 지나간다.

그리스부터 아일랜드까지 유럽의 유명 다리 60여개가 끝없이 이어진다.

아무런 대사도 없다.

그저 잔잔한 배경음악만 흐를 뿐. 소박한 돌다리부터 현란한 철교까지 인간이 지나온 궤적을 다리라는 작은 프리즘으로 들여다본다.

강 양쪽을 이어주는 다리처럼 여러 이념과 사상으로 갈라진 세상의 만남을 희구하는 것일까. 하지만 해답은 제시되지 않는다.

단편영화 '유럽의 다리' 내용이다.

이런 것도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당당한' 영화다.

예술.문화 케이블 채널인 A&C코오롱이 내년 1월7일부터 매주 목요일 정오 (목.일요일 자정 재방송)에 내보내는 '단편영화 걸작선' . 아카데미상을 비롯

한 주요 국제영화제 수상작 1백여편을 추려 13부작으로 방영한다.

단편영화는 극장용 상업영화에 비해 시간이 짧고 스케일이 작지만 독특한 상상력과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장르. 소수 전문가나 동호인이 가끔씩 접하던 단편영화의 진수에 일반인이 흠뻑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한국영화의 저력도 다양한 모험과 도전에서 비롯한다고 볼 때 향후 우리의 방향을 일러주는 길잡이 역할도 한다.

각 작품의 길이는 대체로 5~15분. 단편소설이 인생의 단면을 예리하게 노출하듯 장편영화가 시도할 수 있는 삶의 미세한 부분을 파고들고 있다.

몸집이 가벼운 만큼 폭넓은 소재가 자랑이다.

예컨대 비정한 산업사회를 힘겹게 살아가는 소시민을 풍자하거나 ( '시민 해럴드' ) , 텔레비전의 폭력성을 고발하거나 ( '텔레비전 시청' ) , 근로자 해고문제를 해부하거나 ( '해고된 뒤에' ) , 현대 대량생산시대의 부작용을 우화적으로 표현하거나 ( '동물 스트레스' ) , 기성의 권력에 반항하는 모습을 사람을 거부하는 의자를 통해 빗대는 ( '의자 이야기' ) 식이다.

서정적 영상이 흘러넘치는 '시네 - 포엠' 작품도 많다.

단풍이 붉게 물든 캐나다의 11월 정경을 담은 '11월' ,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소년과 눈거위' 등등. 애니메이션의 비중이 큰 것도 특징이다.

대략 30~40% 정도. 생명체의 투쟁과 발전을 풍자한 '게임의 법칙' ,에스키모의 전설을 옮긴 '거위와 결혼한 올빼미' , 재즈 음악을 배경으로 색상의 현란함을 묘사한 '지루하지 않게' 등이 선보인다.

낙하산 부대로 변신한 물방울이 공해를 퇴치하려고 투하작전을 펴는 등 물의 일생을 코믹하게 다룬 '물방울' 도 신선하다.

위험수위를 넘어선 환경문제를 다룬 작품도 다수. 인간은 물론 육지.바다 등 생태계 전체의 파괴를 그린 '지구 깊숙이' , 환경오염이 인체에 미치는 치명적 영향을 형상화한 '사망원인' 이 대표적이다.

"단편영화는 새로운 발상과 기술로 광고.뮤직비디오.TV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 박준용 PD의 말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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