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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욱의 경제세상

150만 호 보금자리 주택, 전부 임대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뜨거운 가슴에 뜨거운 머리는 노무현 정부의 전매특허였다. 가슴은 뜨거워도 머리는 차가워야 하는데, 지난 정부는 머리까지 뜨거웠다. 그래서 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논란에 시달렸고, 포퓰리즘 비판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이 정부도 지난 정부 못지않게 머리가 뜨거운 것 같다. 친서민의 구호 아래 ‘뜨거운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보금자리 주택만 해도 그렇다. “집 없는 서민들이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뜨거운 가슴이야 누가 탓하랴. 문제는 방법이다. 정부는 보금자리 주택 150만 호 가운데 80만 호만 임대하고, 나머지는 분양할 계획이다. 이 중 분양이 문제다. 엄청난 후유증이 예상돼서다. 한 달 뒤 분양하는 데도 온라인에선 진작부터 야단이었다. ‘보금자리 주택 필승 청약 전략’ 같은 글들이 허다하다. 분양 가능성을 문의하는 글들은 훨씬 더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 세곡과 우면지구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절반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곳도 70~80% 정도다. 분양만 받으면 가만히 앉아서 수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얻는다는 얘기다. 투기 광풍이 일어날 건 자명하고, 그러니 '로또 아파트’로 불리고 있다. 국토해양부도 이를 우려한다. 막대한 시세차익을 환수하기 위해 채권입찰제나 전매제한 기간 연장을 검토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래 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건 정부도 알고 국민도 안다.

이 정부 들어 시행 중인 신혼부부와 다자녀 가구 특별분양제도 그렇다. 이미 분양받자마자 전매 차익을 챙기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하물며 분양가가 아주 싼 보금자리 주택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게다. 편법과 불법이 속출할 것이다.

이런 후유증도 문제지만 정부 철학이 더 문제다. 서민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의 기본 철학은 소유가 아니라 이용이라는 건 상식이다. 분양보다는 임대가 맞다. 그래, 분양 받을 능력이 있는 서민에게 돈 벼락 맞도록 해주는 게 친서민인가, 집을 살 형편조차 안 되는 ‘진짜 서민’에게 임대 아파트를 제공하는 게 친서민인가.

신혼부부에게 특별분양해 주는 것보다 3D업종에서 장기근속해 온 저소득근로자에게 보금자리 주택을 임대해 주는 게 친서민적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무주택 서민의 재산을 늘려주기 위해 그린벨트를 희생한다는 것 역시 이해 안 되는 일이다.
당연히 보금자리 주택은 150만 호 전부를 임대로 돌려야 한다. 그게 진짜 친서민 정책이다. 친서민 하면 이 정부보다 한 수 위인 노무현 정부가 왜 분양을 생각지 않았는지 되새기면 답이 나온다. 서민의 주거 안정을 부르짖었던 지난 정부가 내놓은 정책도 국민 임대주택 100만 호 건설이었지 분양주택이 아니었다.

취업 후에나 빚을 갚도록 한 대학생 학자금 대출제도 그렇다. 학비를 빌린 가난한 대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을 못해 원리금을 못 갚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현실은 아주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번 뒤에나 학자금을 갚으라고 제도를 바꾼 건 전형적인 선심 행정이라 생각된다. 지금 시스템에서도 제대로 돈을 상환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가 상당한데, 이렇게 바꾸면 더 심해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는 매년 1조원 이상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혹여 이 정부는 돈만 빌려줄 뿐 회수는 그 다음 정부의 몫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정말 가난한 대학생을 위할 요량이었다면 차라리 대학 등록금을 어떻게든 낮추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이 정부의 중도실용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사회주의 정책이라도 국민에게 이롭다면 받아들이는 게 맞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이듯, 친서민 역시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정말 깊이 고민한 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만 염두에 둔 친서민인 듯해서 하는 얘기다. 만약 그렇다면 나라가 거덜나는 친서민이 된다.

김영욱 중앙일보 경제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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