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아 장부조작과 감독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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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아.아시아자동차가 지난 7년간 원천적으로 전산기록장부부터 조작해 약 4조6천억원의 적자를 줄여 허위 회계보고서를 발표해 왔다는 사실이 이제야 밝혀졌다.

속은 것은 이 회사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다.

주가하락과 강제 감자 (減資) 를 통해 선의의 군소 주주들은 큰 손해를 보았다.

이들 회사에 자금을 대출했던 금융기관과 채권매입자들도 큰 손해를 보았다.

그동안 이런 대규모 분식.허위 회계보고서를 믿고 결손나는 회사를 이익내는 회사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언필칭 기아자동차는 '국민기업' 이라고 자임했던 회사다.

종업원지주조합이 대주주였고 전문경영자가 경영을 맡고 있는 믿을만한 사회친화적 기업이라고 선전돼 왔다.

노동조합이 경영에 적극 참여하는 본보기 기업으로 칭찬되기도 했다.

그런 회사가 부실경영에 더해 범죄적 장부조작으로 주주와 채권자에 대한 기만마저 자행했다는 것은 참으로 가증스럽다.

이런 회사의 회계를 감사한 회계법인은 또 무엇을 했는가.

왕왕 공인회계사들의 직업윤리를 저버린 고객회사에 대한 태만한 감사보고서와 허위회계 눈감아주기 비리가 터지곤 해 왔다.

공인회계사 감사 결과 '적정' 또는 '한정적 적정' 이라고 매긴 회계보고서가 그 회사가 부도나 파산에 이르는 바람에 전혀 '부적정' 이었음이 밝혀졌던 경우도 많다.

이런 회계사나 회계법인들은 기업 경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불투명성만 조장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 대한 감독기관인 현재의 금융감독위원회 시스템과 그 전신 (前身) 은 무엇을 했던가.

기아의 부실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 사이에 세상을 요란스럽게 하면서 기아는 공개입찰매각 과정을 거쳤다.

금감위는 최종적 채권자인 예금자와 주식대금은 댔지만 경영에는 소외된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기구다.

금융기관과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에 관한 최후, 그리고 최고의 책임자다.

그 힘과 능률을 강화하기 위해 지금의 금감위가 탄생했다.

그런 기관이 기아.아시아자동차를 부실하게 감사한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에 대해 경고.주의.업무제한.직무정지 등 가벼운 징계로만 끝내고 말았다는 것에는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구조개혁의 첫째 목표는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다.

그런데 투명성과 신뢰성의 최후 보루인 감독기관의 신뢰성마저 신뢰할 수 없다면 이를 어쩌면 좋을 것인가.

개혁은 금융감독시스템 자체에서 시작돼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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