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회에서의 첫 국장, 의회주의 살리는 계기 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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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지게 됐다. 정부가 국민화합을 위해 유족의 뜻을 수용한 결과다. 전례와 형평성 문제로 논란이 있으나, 이렇게 결정한 취지를 살려 사회통합을 위해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 며칠간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지켜보면 그것이 지나친 기대는 아니라고 본다. 분향소에는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정파를 떠나 사회 각계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의 조문 내용과 격식도 전례 없이 진중하다. 김 전 대통령 측도 정치적 입장을 가리지 않는 진심으로 조문을 받고 있어 모처럼 화합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특히 빈소와 대표 분향소를 국회에 설치하고, 영결식도 이곳에서 치르기로 한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앙청, 최규하·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복궁 앞뜰에서 거행했다. 그런데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국회에서 하는 것은 산업화와 대비해 민주화 과정에 그가 바친 공헌을 평가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평생을 의회민주주의 발전에 바쳤던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우리 정치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정치권에서는 현 국회의 참담한 현실에 대해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었으면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의회를 중시하면서 의원직 사퇴 등 극단적인 방식보다 제도적 절차를 존중했다. 장외투쟁 등은 원내 투쟁의 보조 방편으로 활용했을 뿐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주국야광’(晝國夜廣·낮에는 국회, 밤에는 광장에서 투쟁해야 한다)이라며 민주당의 국회 복귀를 주장한 것도 그런 뜻을 받든 것이다.

더구나 여야 정권교체까지 경험한 마당에 언제까지 해머와 전기톱이 난무하는 야만적 폭력 국회를 반복할 것인지 정치권은 고민해야 한다. 특히 민주당은 소수의 의견도 존중돼야 하지만 합의가 어려우면 다수결에 따르는 것이 의회민주주의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유념하길 바란다. 국회에서의 첫 국장을 계기로 고인이 평생 강조해 온 의회주의가 다시 한 번 꽃 피우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