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불행했던 과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로버트 맥나마라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수행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는 국방장관으로서 미국의 군사개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베트남전쟁을 '맥나마라의 전쟁' 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러나 맥나마라는 1965년 시작된 북폭 (北爆) 을 계기로 군사적 방법에 회의를 느끼고 평화해결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에게 미국의 베트남 군사개입에 대한 전면조사를 지시했다.

그 결과 7천쪽에 달하는 방대한 비밀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이 문서가 누출돼 일반에 공개된 것이 유명한 '펜타곤 페이퍼스' 다.

그후맥나마라는 세계은행 총재로 취임해 81년 은퇴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베트남전쟁에 대해선 줄곧 침묵을 지켜 왔으나, 95년 종전 (終戰) 20주년을 맞아 회고록 '베트남의 비극과 교훈' 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맥나마라는 미국의 군사개입이 '큰 실수' 였으며, 자신을 포함한 정치가.관리.군인들의 오판과 용기부족으로 수많은 미군 병사들과 베트남인들이 희생됐다고 반성했다.

특히 자신의 '최대의 실수' 는 베트남 민족주의에 대한 무지였다고 고백했다.

베트남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베트남은 3백만명이 목숨을 잃고, 2백만명이 불구가 됐다.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과 고엽제 (枯葉劑) 살포로 국토는 황폐해지고, 경제는 마비상태에 빠졌다.

한편 미국은 5만8천명이 전사하고, 15만3천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25만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한국은64년부터 73년까지 약9년동안 31만3천명 군대를 베트남에 파견했다.

베트남 파병을 통해 경제적으로 '월남특수 (特需)' 를 누리기도 했지만 인적 손실도 컸다.

전사 4천9백60명, 부상 1만9백62명, 그리고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2만명 가깝다.

8천~1만5천명으로 추산되는 한국계 2세 '라이따이한' 문제도 그대로다.

92년 12월 한국 - 베트남 수교 (修交) 이후 양국은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사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덮여 있었다.

수교 당시 우리 외무장관이 '유감' 을 표시했을 뿐이다.

96년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때도 과거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베트남을 국빈 방문중인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15일 양국 정상회담에서 '불행했던 과거' 를 언급했다.

金대통령은 오늘 베트남 국부 (國父) 호치민 (胡志明) 묘소도 참배한다.

이제 양국간 어두웠던 과거는 가고 밝은 미래만 있기를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