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제6장 두 행상

"칼부림한 놈이 어떤 놈이야?" 태호였다. 십여 명의 시선이 일제히 눈을 부라리는 태호에게 쏠렸다.

수세에 몰렸던 두 사내가 다짜고짜 태호의 멱살을 뒤틀어 잡으며 대거리를 퍼부었다. "이건 또 마빡에 피도 덜 마른 애숭이잖아. 나다, 왜 이 자식아. " 수작 길게 늘어놓고 있을 겨를도 없었다. 태호의 주먹이 사내의 면상을 퍽 소리가 나도록 갈겼고, 얻어맞은 사내는 저만치 나가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러나 태호는 사이를 두지 않고 달려가서 엉덩방아 찧은 사내의 허리춤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면상을 만화에 나오는 무소불위의 주인공처럼 본때 있게 갈겨서 피칠갑을 시켰다.

주먹을 날릴 때마다 윗도리 겨드랑이에서 실밥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구타였지만 사내가 엉겁결에 입은 충격은 컸던 모양이었다.

눈앞에 번갯불이 번쩍거렸던 사내는 다시 일어나 반격할 기력을 잃어버렸다.

주먹 한가지는 내로라 하는 복병을 만난 것이었다.

그러자 일행이었던 다른 사내는 재빨리 변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는 태호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좋은 목소리로 달래기 시작했다.

"무슨 칼부림을 했다고 이러시나. 시늉만 했을 뿐인데, 잘못됐으면 말로 합시다. 좋은 말 두고 왜 이러십니까. 같은 행상들끼리. " "야 임마. 너도 싸잡아서 혼찌검 내줄까?" "그만하면 실력을 알아 보았소. " 그때 힐끗 돌아보니, 승희가 담벼락 곁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녀는 태호를 만류하는 법도 없이 시종 태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치를 알아챈 태호는 만류하고 있는 사내를 잡아끌고 공중화장실 뒤쪽으로 비켜났다.

사내는 우선 태호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는 태호의 완력에 기가 질리긴 하였지만, 말로 하자는 장소에선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것 봐 젊은 친구. 날뛰는 놈만 잘난 게 아니야. 젊은이나 우리나 알고 보면 한통속이야. 찬이슬 맞아가며 장마당을 찾아 다니는 고단한 신세들이란 것도 마찬가지. 허기진 배를 시래깃국으로 채워 가며 푼돈 모아 연명하는 것도 마찬가지. 교통들의 등쌀에 좌판을 싸들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쫓기는 신세도 마찬가지. 도매상들 농간에 밑천 날리기를 밥 먹듯 하는 것도 마찬가지. 그런 하찮은 신세들인 우리끼리 같이 먹고 살자고 바둥거리는 건데 뭣이 그토록 밸이 뒤틀린다고 동패를 묵사발 만들어 놔? 꼭 그래야 속시원한가?"

"연약한 여자가 새파랗게 질리도록 칼로 위협한 것도 한통속이니까 참아야 한다는 거요?" "칼을 뽑아든 것은 보기 좋으라고 저지른 짓이 아닌 이상 그 친구가 잘못됐어. 하지만 끽해야 손바닥만한 장터에 수백장이나 되는 전단을 뿌리며 다른 행상들에게 초장부터 찬물을 끼얹는 비윗장은 뭐야? 너희들만 살아남겠다는 수작 아니야?"

"당신네들 비윗장을 건드릴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국산 생선을 제값 받고 팔자는 것이 같은 상인들의 비위를 거슬렀다면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거 아닙니까?" "씨발, 애국자 났구먼. 간고등어 한 손 팔아 끽해야 사오백원 이문 건지자는 것은 너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도매상들 배만 불려주는 이런 아사리판에 수입이니 국산이니 방정을 떤다는 것부터 니는 죽고 나만 살자는 수작 아니고 뭐여? 리어카에 벌여 놓은 생선 팔아서 갑부 되자는 사람 봤어? 그런데 너희들은 시방, 소 길러서 공짜로 넘겨주는 애국 재벌 흉내내는 거야? 황새 흉내내던 뱁새 가랑이 찢어졌더란 말도 못들었어?"

"난전꾼이라 해서 애국하는 길이 있다면 뭐가 두려워서 못하겠습니까. 재벌만 애국하라는 법이 있다는 말은 못들었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애국하는 길은 깔려 있습니다. 니 죽고 나 살자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네들이 보면 알량한 상술이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의도는 바로 알고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

아무래도 속시원한 결말은 날 것 같지 않은데, 제복의 경관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김주영 대하소설)

ADVERTISEMENT
ADVERTISEMENT